시·창업가 "지역서 뒤집자"… 수도 헬싱키와 스타트업 경쟁 [도시 회복력, 세계서 배운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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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핀란드 탐페레 : 노키아 몰락 충격에서 벗어나다

해운대구보다 인구 적은 소도시
노키아 쇠락으로 도시 활력 둔화
허브 '플랫폼6' 통해 성장 발판
비슷한 고민 부산 많은 점 시사
탄소 중립·스마트시티 적극 수용
IT 특장점 유지 위해 노력 지속

지난 5월 메타버스를 주제로 열린 탐페레시의 ‘이매진(IMAZINE) 2024’ 행사 모습. 지난 5월 메타버스를 주제로 열린 탐페레시의 ‘이매진(IMAZINE) 2024’ 행사 모습.
핀란드 최대 섬유제조기업 핀레이슨이 탄생한 탐페레의 섬유공장이 가동됐던 시내 공업지역. 핀란드 최대 섬유제조기업 핀레이슨이 탄생한 탐페레의 섬유공장이 가동됐던 시내 공업지역.

탐페레는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에서 서북쪽으로 180㎞ 떨어진 인구 25만 명의 내륙 도시다. 네시예르비, 퓌해예르비 두 개의 거대가 호수가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탐페레는 사우나의 나라 핀란드에서도 가장 오래 된 공중 사우나가 있는 전통의 도시인 동시에 최대 섬유기업 핀레이슨이 탄생한 공업 중심지였다.

탐페레는 1970년대부터 핀란드 최대 기업 노키아와 결합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노키아의 정보통신 관련 첨단 기술 상당수가 탐페레 대학과의 산학협력에서 탄생했고, 인구 20명 중 1명이 이동통신 분야 종사자일 정도로 탐페레 경제에서 노키아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산업 구조는 스마트폰 시대에 뒤처진 노키아가 쇠락하면서 탐페레에도 큰 리스크가 됐다. 실업률이 증가하고, 생산이 떨어지는 등 도시 활력이 둔화됐다. 그러나 탐페레는 이런 주력 산업의 위기를 단기적에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목하는 ‘회복력 있는 도시’로 부상했다.

탐페레 현지 취재에서 확인한 위기 탈출의 키는 그동안 축적해온 기술력과 산학협력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도시 혁신이었다. 탐페레는 노키아에 집중됐던 도시의 산업 역량을 스타트업으로 분산하는 데 집중했다.

지역 스타트업 육성의 허브 격인 ‘플랫폼6’가 대표적이다. 탐페레 시와 지역 창업가들이 합심해 만든 플랫폼6는 로컬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예비 창업자, 현지 대학, 지역 기관, 투자자 등이 만나 교류하고 성장을 모색하는 곳이다. “수도 헬싱키에 집중된 스타트업 육성 트렌드를 ‘지역’에서 한번 뒤집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는 플랫폼6의 성공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부산에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플랫폼6 관계자는 “현재 참여 중인 80여 개의 스타트업은 지역 내 다른 스타트업보다 30~40% 더 빠른 성장세를 보일 정도로 성공적인 창업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지역 인재 육성·기술 혁신의 요람인 탐페레 대학도 창업 지원기관인 ‘허브’(HUBS)’와 실전 창업 교육 기관인 ‘프로아카테미아’(Proakatemia)를 통해 매년 미래 창업자들을 활발하게 배출하면서 도시의 산업 구조 전환을 이끄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탐페레의 놀라운 점은 해운대구보다 인구가 적은 기초 지자체 수준의 도시 규모에도 불구하고 10년, 20년의 도시 비전을 설정하고, 도시의 인적·물적 역량을 종횡으로 묶어 이를 차근차근 실행해 나간다는 점이다. 탐페레는 최근 탄소 중립, 스마트시티 등 EU(유럽연합) 차원의 도시 의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특히 자연재해, 기후변화, 경제위기 등 예기치 못한 충격 상황에서 도시 회복력을 높이기 위해 시와 기업, 연구소 등을 주축으로 한 ‘레코 2.0’이라는 플랫폼을 가동 중이다.

여기서 탄생한 히에단란타 지역 재개발 사업은 탐페레 서북부의 오래 방치된 땅에 신재생에너지, 저탄소 건축, ICT 인프라 등을 적극 도입해 탄소 중립형 스마트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인근 여러 서유럽 국가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하는 바이오에너지 리사이클링 기업인 BER은 히에단란타 지구 내 각 가정의 싱크대에 파이프를 직접 연결해 음식물쓰레기를 집하 장치에 모은 뒤 여기서 발생하는 바이오 가스로 전기와 열을 생산해 지구 내 버스 연료나 난방에 사용하는 기술을 처음으로 적용한다. BER의 카티 살로넨 이사는 “탐페레도 최근 ‘더운 5월’을 처음 겪는 등 기후위기 충격이 가시화되면서 탄소 저감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절실한 과제가 됐다”며 “지역 기업들도 히에단란타의 성공적 개발을 공동의 목표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기술 개발 등으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노키아의 도시답게 IT 분야의 특장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 중이다. 기자가 방문한 시기에는 탐페레시가 첨단 기술 트랜드를 논의하는 장으로 매년 개최하는 ‘이매진(IMAZINE)’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메타버스를 주제로 한 올해 행사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이 참여해 메타버스 기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오갔다. 탐페레는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레벨 4(차량과 차량 간, 차량과 인프라 간 통신을 통해 주행하는 단계) 자율주행버스 운행을 시작할 정도로 첨단 기술에 열려 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탐페레가 기존의 장점들을 잘 조합해 빠르게 위기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특유의 도시 문화가 밑바탕이 됐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레코2.0’을 주관하는 탐페레시의 일라리 라우타넨 프로젝트 매니저는 “시에서 추진하는 과제에 대해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의 민간 인력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해 기술적 문제 등을 공동으로 해결해 나간다”며 “이런 개방적인 행정은 신기술 적용에도 긍정적이어서 각 지역의 스페셜리스트들이 탐페레에 오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탐페레대에서 교육과 산합협력 등을 오래 연구해 온 이동섭 연구원도 “도시 주요 정책의 시작부터 주민을 참여시키고, 복잡한 기술적 문제는 전문가 판단에 맡기는 걸 당연한 프로세스로 인식한다”면서 “도시 규모나 주력 산업의 차이 등으로 인해 탐페레의 위기 탈출 모델을 곧바로 다른 도시에 적용하긴 어렵지만, 이런 개방적이고 투명한 거버넌스는 부산도 배울 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페레/글·사진=전창훈 기자 jch@busan.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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