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24] 일상이 없는 세상의 영화, 일상 속 특별함을 찾는 영화
‘여기 아이들은…’ vs ‘공원에서’
다르면서도 닮은 느낌의 2편
분쟁 지역·오후 공원 각각 묘사
둘 다 일상의 소중함 느끼게 해
영화는 작은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해 점차 확대된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감독의 철학과 문제 의식이 섞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완성된 작품은 관객의 시야를 넓히는 ‘창’(窓)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통해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란 출신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과 평범한 일상에서 영화의 본질을 고찰하는 손구용 감독을 만나 그들의 영화 세계를 탐구했다.
■‘여기 아이들은…’ 마흐말바프 감독
“영화의 역할은 단순히 엔터테인먼트가 아닙니다. 영화를 통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이란 영화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영화 ‘여기 아이들은 같이 놀지 않는다’로 BIFF를 방문했다. 마흐말바프 감독은 이란 검열 당국의 타겟이 돼 2005년 이후 이란을 떠나 유럽에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올해는 영화 ‘여기…’의 감독으로서뿐 아니라 비프메세나상 심사위원 자격까지 겸해 BIFF를 찾았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하는 ‘여기…’는 하마스 공격 이후 악화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준다. 예루살렘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이자, 긴장과 증오가 일상화된 곳이다. 유대인과 무슬림들은 한 건물에 살면서도 서로 대화조차 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서로를 공격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무슬림과 유대인 사이의 공존과 평화의 해법을 고민한다.
감독은 “예루살렘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겪은 이야기를 영화에 담았다”며 “미디어는 하마스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이스라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누구를 만나는지에 주목하지만 진짜 대다수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일반 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영화 제작 이유를 밝혔다.
정치·문화·사회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과거의 예루살렘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었다”면서 “지금은 팔레스타인 아이들과 이스라엘 아이들이 같이 놀지 않고, 사랑에 빠져서도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
영화는 암울한 도시 분위기와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담아내면서도 아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있음을 보여준다. 감독은 “권력자들이 죄를 짓고 아이들이 대가를 치르는 일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반복돼선 안 된다”며 “영화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이 거울을 보고 사람들이 우리가 한 실수를 깨닫고 고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원에서’ 손구용 감독
산책과 오후 풍경, 공원의 모습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은 감독도 있다. 올해 BIFF를 찾은 손구용 감독은 관객에게 여백을 주는 영화를 선호한다며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손구용 감독은 올해 영화 ‘공원에서’로 BIFF에 초청됐다. ‘공원에서’는 ‘밤 산책’(2023), ‘오후 풍경’(2020)을 제작한 그의 신작 다큐멘터리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손 감독은 미국 시카고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의 작품 ‘밤 산책’은 지난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하버 부문에 초청된 데 이어 같은 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부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공원에서’는 일반 관객에게 조금 생소한 작품이다. 영화는 1시간 20분가량의 상영시간 동안 공원의 풍경을 조용히 응시한다. 새가 나무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풍경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평화로운 공원의 일상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손 감독은 시 한 편을 영상으로 만드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을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오규원 시인의 시 ‘뜰의 호흡’에서 영감을 얻었다. 어느 한적한 오후의 공원 풍경과 함께 시의 구절들이 영화에 등장한다”며 “현실에서는 약 10분가량의 시간이지만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이 이뤄져 1시간 넘는 분량으로 풀어냈다. 풍경을 주된 대상으로 표현한 조형적인 측면이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눈과 귀를 바로 통과하는 영화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서 능동적으로 관객이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선형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걸 비틀고 관객들이 선형적인 시간의 속성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고 싶었다. 다른 영화가 육식동물이라면 이 영화는 초식동물 같다”고 설명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