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서 사라진 오징어가 북극에…기후위기 덮친 북극해
어라온호 78일간 항해 후 복귀
대게 이어 오징어 유생까지 확인
해빙 줄며 장비 무사 ‘웃픈 현실’
“14번번 항해에서 보지 못한 모습”
국내 유일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78일간 북극을 항해하며 극심해진 ‘기후 위기’를 실감했다. 그간 북극해에서 보지 못한 해양생물을 비롯해 확연히 줄어든 해빙의 분포를 확인했다.
극지연구소는 아라온호가 78일간의 북극 연구항해를 마치고 지난달 30일 광양항에 도착했다고 13일 밝혔다. 아라온호는 이번 연구항해를 통해 북위 77도에서 처음으로 오징어 유생(동물이 완전한 성체로 자라기 전의 상태)을 채집했다. 북극해 고위도 지역에서의 오징어 서식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특히 극지연구소 양은진 박사 연구팀은 지난해 대게에 이어 이번에 오징어까지 채집했는데, 이는 북극해 밖에 살던 해양생물이 점차 북극으로 유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회유성인 오징어는 최근 수온이 급격히 오르면서 점차 북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동해에서도 명태에 이어 오징어가 고수온으로 인해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라온호는 올해 연구항해에서 이례적으로 장기 관측장비를 온전히 수거했다. 장기 관측장비는 북극해의 연간 변화를 관측하기 위해 매년 설치하는 계류 장비다. 통상 다음 해에 장비를 회수하는데, 그간 해빙(바다 얼음)이 배의 접근을 막거나 장비를 손상해 온전히 수거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빙의 분포가 평년 대비 크게 줄어든 탓에 장비를 손상 없이 회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라온호는 해빙이 줄며 ‘해빙캠프’ 연구 장소를 찾는 데도 애를 먹었다. 해빙캠프 연구는 해빙에 배를 정박한 뒤 해빙 두께 등을 측정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북위 79.5도에서 진행되는데, 올해 캠프 위치는 지난해보다 북쪽으로 100km가량 올라갔다.
북위 74도에서는 가로 350m, 세로 110m에 달하는 대형 빙산이 발견되기도 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해당 빙산은 캐나다나 그린란드 빙하에서 떨어져 나와 떠돌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평양 쪽 북극해에서는 보기 드문 규모다. 연구팀은 빙산이 녹으면서 주변 해수의 염분을 떨어뜨려, 북극해 생태계도 영향받을 것으로 우려한다.
극지연구소 관계자는 “대형 빙산의 등장을 비롯해 해빙의 감소, 비 북극권 해양생물의 출현 배경에는 지구온난화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지연구소는 해빙이 줄어든 틈을 타 고난도 탐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홍종국 박사 연구팀은 이전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북위 80도 위의 공해상에서 해저 탐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에 수집한 해저퇴적물은 북극 환경을 복원하는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북극해 동시베리아해에서는 지난 탐사에서 찾은 메탄가스 방출 지점 하부의 지층 구조를 확인하기 위한 지구물리탐사가 진행됐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 효과가 매우 큰 기체다. 극지연구소는 이번에 관측한 자료를 메탄 생성 원인과 방출량을 분석하는 데 활용할 예정이다.
아라온호는 약 한 달간의 정비를 마친 뒤 이달 말 남극으로 다시 떠날 예정이다. 극지연구소 신형철 소장은 “아라온호는 2009년 이후 14번의 항해에서 보지 못했던 북극 바다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돌아왔다”면서 “관측·채집한 자료를 분석해 기후변화의 영향을 더 구체적으로 살피고,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 대응 역량 향상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