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동백아가씨’ 60년
1964년 여름, 서울 중구 퇴계로 스카라극장 앞 목욕탕 건물 2층 녹음실. 임신한 두 여가수가 나란히 마이크 앞에 섰다. 그야말로 찜통더위였다. 에어컨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낡은 선풍기 한 대가 윙윙 큰소리를 내며 돌아가는데, 그나마 노래할 때는 켤 수가 없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 탄생한 노래가 바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노래는 대박이 났다. 이전까지 고단한 세월을 보내던 이미자는 일약 트로트의 지존으로 우뚝 선다. 이때 함께 녹음한 가수가 현미다. 그가 부른 ‘떠날 때는 말없이’ 역시 흥행에 성공한다. “만삭에 녹음하면 대박 난다”는 유행의 언어들이 가요계를 흔들던 시절이었다.
‘동백아가씨’는 같은 해 개봉한 동명의 영화 주제가였다. 서울의 대학생과 시골 아가씨 사이의 애절한 순애보. 영화를 본 여성 관객들이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고 한다. 이들이 레코드 가게로 달려갔고, 음반은 금세 동이 났다. 주제가의 인기가 영화의 인기를 훨씬 능가하는 기현상은 35주 동안 가요 프로그램 1위라는 진기록으로 이어진다. 2000~3000원(당시 쌀 한 가마니 3500원)이던 이미자의 출연료는 단숨에 열 배 이상 뛰었다. 하지만 절정의 인기는 1년 만에 금지곡 철퇴를 맞는다. 표면적 이유는 ‘왜색풍’이라지만 정치적 상황에 의해 희생된 바가 크다. 해금된 건 1987년, 22년이나 지난 뒤였다.
이 노래를 만든 백영호(1920~2003) 작곡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부산 서대신동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듣고 보았던 항도 부산의 뱃고동 소리, 겨레의 한과 애수, 이별의 애타는 아픔이 모두 음악 세계의 밑거름이 되었다. 1950년대 중반 부산 미도파레코드 때부터 작곡과 가수 발굴 능력은 탁월했다. 그가 빚은 명곡들은 이루 다 헤아리기 힘들지만, 100곡 이상을 함께 쏟아낸 이미자와의 콤비가 단연 두드러진다. 그중에서도 ‘동백아가씨’는 운명을 건 작품이었다. 노랫말도 한산도 작사가에게 여러 번 수정을 거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동백아가씨’ 발표 6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이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금 K팝이 전 세계에 위상을 떨치고 있지만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저변에는 격랑의 역사, 곡절의 시간을 통과한 ‘동백아가씨’ 같은 노래들이 있었다. 세상을 위로하고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진 대중가요, 나아가 부산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음악가들. 그에 대한 합당한 평가와 대접이 필요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