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 교양인이 알아야 할 음식의 역사 / 자크 아탈리
음식을 중심으로 인류사 조망
과거 다양한 식문화 살펴보고
미래 식문화·미래사회 예견도
인류 역사의 변곡점 곳곳에서 매번 그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요소는 무엇일까.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꼽을 테다. 우리의 조상은 먹을거리를 찾고, 잡고, 나누고, 빼앗거나 지키기 위해 의사소통을 발달시켰다. 화식(火食,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 먹는 것)으로 소화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장의 크기는 줄고 뇌의 용량은 커졌고, 이 또한 언어의 탄생에 큰 영향을 줬다. 먹을거리의 주요 공급 방식이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 바뀌면서 계급이 만들어지고 국가가 생겼다. 지렛대, 화살, 바퀴 등 그 이후에 이루어진 혁신적인 발명들도 먹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가능했다.
<교양인이 알아야 할 음식의 역사> 저자는 “인간의 역사를 정리하다가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어떤 인간 활동보다 역사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생겼고, 나라의 왕들은 또한 통치하기 위해 먹었다. 어떤 왕은 한 번 식사에 스물두 차례 음식이 나오도록 했고, 또 다른 왕은 200명의 신하들이 말 한마디 못 하고 선 채로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서 식사를 했다. 이처럼 음식과 그것을 먹는 행위는 곧 권위를 상징하기도 했다.
굳이 일부 왕의 과(過)한 행동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음식은 수천 년 동안 사회적 관계의 구조를 정립하는 하나의 기준이었다. 신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사람, 가족의 세 끼 식사를 책임지는 사람, 음식을 만드는 사람, 먹을 것을 구걸하는 사람 등등. 음식에 대한 관계성만으로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단 8명의 인간 관계로 축소해 놓은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에서도 계급을 가르는 기준은 물과 음식이었다. 드라마에서는 가장 윗층(8층)에 있는 사람에게 물과 음식을 아랫층으로 내려보낼 수 있는 권리를 줌으로써 최상의 계급성을 함께 부여한다.
물론 음식의 역사로 인류의 역사를 설명하는 관점이 마냥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도 <총 균 쇠>의 상당 부분을 식량의 생산 능력 여부가 문명의 발달과 지리적 불평등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에 할애한다. 유발 하라리 역시 <사피언스>에서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의 하나로 농업혁명을 꼽았다.
저자의 서술 중 오히려 더 흥미로운 것은 과거에 대한 설명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저자에 따르면, 멀지 않은 미래엔 다이닝룸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고도로 도시화된 사회에서 주거 면적에 따른 비용은 더욱 비싸지고, 식사를 준비할 혹은 식사를 할 공간을 따로 두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것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주방과 거실의 구분은 사라지고, 심지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식탁 따위도 함께 사라지고, 제각각의 스크린(스마트폰 화면 등) 앞에서 다들 혼자 먹을 것이다. 음식 종류 역시 통조림에 든 완제품, 냉동 또는 냉장된 완제품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물론 일부의 경제적 강자들은 예외다. 결국 “최상류층만 대저택에 주방과 주방을 책임질 하인들을 뒀고, 나머지는 길거리 상인에게서 음식을 샀던 고대 로마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는 게 저자의 대예언이다.
“인생 별 거 있나. 좋은 사람이랑 맛있는 거 먹는 게 최고의 도락이지”라고 되풀이하는 나 같은 식도락자들에게는 끔찍한 아포칼립스의 결말이지만, 또한 식도락자라서 오히려 더더욱 읽는 내내 흥미가 구미(口味)처럼 당기는 책. 자크 아탈리 지음/권지현 옮김/따비/396쪽/2만 3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