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시대에 대한 이야기, 성실하게 써내려 가겠다” [제41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소감
김혜진 <축복을 비는 마음>
집에 관한 일관된 문제의식
사람들에 대한 응원도 담아
“읽는 즐거움 더 많이 느껴야”
요산김정한문학상은 김정한 선생의 삶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김정한은 현실에 참여해 불합리한 사회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 문학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김정한의 이러한 문학 정신은 소설 ‘산거족’에 나오는 구절이자 김정한 문학비에 적힌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와 타협한다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라는 구절로 설명할 수 있다. 올해 제41회 요산김정한문학상은 수상작으로 김혜진 소설가의 <축복을 비는 마음>을 택했다. 이 소설이 집에 관한 일관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음이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선자 김 소설가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요산 김정한은 ‘사람답게 살아가라’라고 가르쳤다. 심사위원들은 <축복을 비는 마음>이 부당한 현실을 방관하지 않는 새로운 휴머니즘 문학을 수행하고자 했던 요산문학 정신과 부합한다고 봤다. 제41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 소감을 부탁한다.
“학창 시절, 김정한 선생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읽었다. 선생은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를 누구보다 사람답게 살아내기 위해 분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신이 깃든 상을 수상하게 되어 기쁘다.”
-<축복을 비는 마음>은 집에 관한 서로 다른 여덟 편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비슷한 색깔로 일관되게 이어지는 느낌이 든다. 작가는 이전에도 <중앙역>, <불과 나의 자서전> 등 집과 관련된 내용을 창작한 것으로 안다. 특별히, 왜 이토록 집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소설로 쓰는지 궁금하다.
“소설을 쓸 때 늘 집이라는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고, 그중에서도 집은 한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이 담긴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관계, 생각, 마음, 기분, 현재의 시간은 물론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까지 품고 있는….”
-소설에는 재개발, 경매, 계약 기간 만료와 관련한 전문적인 부동산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아무래도 작가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한 여러 가지 주거 형태가 소설에 많이 반영이 된 것 같다. 대구 출신으로 소개되는데 서울에 올라와 집과 관련해 어떤 경험들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서울에 사는 동안 여러 번 이사를 했다. 좋은 이웃도 만났고, 난처한 경험도 했고, 조마조마한 순간들도 있었는데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 집을 둘러싼 그 동네만의 고유한 분위기다. 지금은 그 당시 내가 썼던 소설들을 통해 그 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그 집에서, 그 동네에서 그때 그런 소설을 썼었지, 하고.”
-<축복을 비는 마음>에 수록된 ‘사랑하는 미래’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멀리 집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녀를 채근하던 조바심이 기대감으로 바뀐다. 그 집엔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순수한 애정과 진실한 마음이 머물러 있다. 이 순간, 그녀의 집은 특별하고 유일한 장소다. 매일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움트는 공간이다.’ 집은 어떠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또 오늘날 우리가 집에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책의 해설에서 이소 평론가는 이렇게 적었다. ‘주택을 의미하는 하우스(house)와 가정을 의미하는 홈(home)이 우리말에서는 모두 집이라는 단어로 통하지만, 그 집이 의미하는 바가 불안정하게 하우스와 홈 사이를 오가며 구성되고 있다’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집은 값비싼 상품이자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서의 가치에 치중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집을 채우는 보이지 않는,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도 자주 떠올리면 좋겠다. 어떤 순간에 우리를 깊이 위로하고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수록작 ‘자전거와 세계’에는 ‘할머니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인 그녀 또한 할머니가 떳떳하지 않게 마련한 돈봉투를 결국 받고 만다. 이 소설에는 많은 주인공이 집의 이해관계와 얽혀 있다. 집을 사러 온 사람, 집을 팔고 싶은 사람, 세 들러 온 사람, 그 세입자의 집주인, 건물주인, 건물주인의 잡일을 도맡아 하며 세입자에게 건물주의 대리인 노릇을 하는 또 다른 세입자, 집을 나눠 쓰는 사람, 집을 청소하는 사람 등이다. 소설이 전체적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양면성이 있고, 같은 사람도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런 점이 이 소설의 매력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도 좋은 사람일까, 나에게 나쁜 사람이 누군가에게도 나쁜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람은 복잡한 존재이고 상황이나 관계,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 사람의 어떤 행동과 선택이 결과라고 한다면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관심이 있는 편이다.”
-‘사랑하는 미래’에 나오는 “일? 아니에요. 이건 일 아니에요. 이건 일 아니고 꿈이에요”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받는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사실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살아간다. 집은 소재나 배경이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꿈을 응원하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가.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집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집을 둘러싼 관계 혹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집에는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역사와 현재가 머물러 있고, 그 역사와 현재를 원동력 삼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집들, 그 집들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들에 대한 응원이기도 하다.”
-표제작 ‘축복을 비는 마음’이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다. 작가가 마지막에 선물을 숨겨 놓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깨끗하게 청소해 드리는 만큼 좋은 일 많이 생기시라고 빌어주는 거죠”라고 말하는 대목을 읽고는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작가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듣고 싶다.
“일이라는 건 참 이상해서 하다 보면 시작할 때의 마음을 잊게 된다.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도 하다 보면 무덤덤해지고, 익숙해지고, 나중엔 거의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임하게 된다. 그러나 문득 한 번씩 일에 대해 가졌던 첫 마음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지 않나. 평소에는 마음속 깊이 넣어두고 잊은 듯 일하지만, 불현듯 그 마음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소설 속에서 인선이 농담 반 진담 반의 말투로 한 저 말이 실은 많은 이들이 일에 대해 간직하고 있는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품귀 현상을 빚을 만큼 그의 소설이 많이 팔리고 있다. 독자들이 문학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거나 특정 작가에게 지나친 쏠림 현상도 우려되는 게 사실이다. 젊은 작가로서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어떻게 느꼈으며, 문학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말해 달라.
“한 사람의 독자로서, 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정말 벅차고 기쁜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었던 밤은 내게도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많은 분들이 한국 문학, 나아가 문학 자체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가져주시리라 믿는다. 읽는 일의 즐거움, 쓰는 일의 즐거움을 모두가 더 자주, 더 많이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인문학의 위기가 시작된 지도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지도 오래되었다. 정치권에서는 ‘소설 쓰네’라는 식으로 소설을 비하하는 표현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AI가 소설을 쓰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 소설과 소설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대학에 다닐 때도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문학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상상할 때, 타인의 내면으로 다가설 때, 문학만큼 그것을 탁월하게 해낼 수 있는 장르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산과의 인연이나 부산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으면 말해 달라.
“부산은 내 아버지의 고향이고, 큰집이 있어 어린 시절부터 자주 왔다. 부산에 오면 늘 크고 환한 느낌을 받곤 했는데 무엇보다 엄청난 활기에 압도되는 기분이 설레고 좋았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물놀이했던 기억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통해 작가를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지금 쓰고 있거나, 앞으로 쓰려고 하는 소설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해 달라. -어떤 소설가가 되고 싶고, 어떤 소설가로 독자들로부터 기억되고 싶은가.
“지금은 한 직업인의 삶에 대해 쓰고 있다. 내년 즈음에는 장편으로 출간할 생각이다. 앞으로도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속한 사회와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성실하게 써나가고 싶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