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나 설사 뒤 갑자기 걷기 힘들다면 "당장 신경과로"
[길랭-바레 증후군 증상과 치료]
자가면역질환으로 말초신경 손상
상기도·위장관 감염 뒤 발병 많아
전신마비 증상 빠르게 진행 특징
호흡부전 등 합병증 적절히 대처
재활치료로 후유증 최소화해야
"신속한 진단과 치료 시작 관건"
길랭-바레 증후군의 길랭과 바레는 프랑스 의사들의 이름이다. 1916년 1차 세계대전 당시 급성 전신마비가 발생한 병사를 통해 이 병을 보고했다. '증후군'은 원인이 불분명하고 증상이 단일하지 않을 때 붙는다. 매년 인구 10만 명당 1.1명에서 발병하는 희소병이지만, 최근 국내 연예인들이 잇따라 자녀의 투병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동아대병원 신경과 윤별아 교수의 도움말로 길랭-바레 증후군에 대해 알아본다.
■선행 감염 뒤 전신마비 시작
길랭-바레 증후군은 말초신경계에 손상이 생겨 발생하는 염증성 질환이다. 말초신경계는 뇌나 척수의 중추 신경계에서 나와 온몸에 나뭇가지 모양으로 분포한다. 신경세포의 밖을 둘러싸고 있는 수초라는 절연물질이 벗겨지거나 드물게 신경세포의 축삭이 변성되면 감각 정보를 전달하고 운동 정보에 반응하는 말초신경계의 역할에 문제가 생긴다.
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대부분 감기와 같은 상기도 감염이나 장염 등의 위장관 감염 후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연구자들은 이를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이 먼저 발생한 뒤에 외부 침입자와 싸워야 할 면역세포가 거꾸로 우리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설명한다.
대표적인 유발 요인으로는 식중독의 가장 흔한 원인균인 캄필로박터 제주니가 꼽힌다. 덜 익은 닭고기나 돼지고기, 혹은 이를 사용한 오염된 조리기구를 통해 감염된다. 그 외에도 거대세포 바이러스, 엡스타인바 바이러스, 중남미에서 유행한 지카 바이러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등도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드물게 백신 접종이나 수술 등 면역 체계의 변화를 유발하는 상황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갑자기 진행되는 전신마비다. 윤별아 교수는 "주로 설사나 감기 등 선행하는 감염을 앓고 난 뒤 4주 이내(대부분 2주 이내)에 전신마비가 시작되고, 이로부터 한 달 이내(대부분 2주 이내)에 가장 증상이 심한 상태까지 도달한다"고 설명했다.
약 50%에서는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 양측 얼굴 신경마비나 삼킴장애 등의 뇌신경장애가 발생한다. 마비 증상이 시작되기 전에 손발의 저림이나 통증, 근육통 등이 선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태는 짧게는 2일에서 6개월까지 지속될 수 있고 수개월에 걸쳐 서서히 호전된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증후군이라는 이름대로 임상 양상이 매우 다양해서 초기 진단이 쉽지 않다. 윤 교수는 "신경과 전문의가 감염력과 전신마비의 진행 경과 등 병력을 자세하게 듣고 길랭-바레 증후군이 의심되면 다양한 신경학적 진찰을 통해 먼저 임상적으로 추정해야 한다"며 "이후에 신경전도 검사와 같은 전기생리검사, 뇌척수액검사 등 다양한 검사 결과를 종합해 진단하게 된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집중치료실 관찰 필요
효과가 확인된 약물치료에는 건강한 면역 글로불린을 정맥으로 주입하는 면역글로불린 정맥치료와 환자의 혈액 내 독소를 제거한 뒤 다시 주입하는 혈장분리교환술이 있다. 보행이 어려운 중등도 이상의 기능장애가 있다면 2주 이내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초기에 합병증을 예방하는 치료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호흡 근육에 문제가 생기면 호흡부전으로 인공호흡기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심한 경우 집중치료실에서 치료하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다양한 자율신경기능 장애로 심한 부정맥, 급격한 혈압 변화, 배뇨장애나 마비성 장폐쇄가 나타날 수 있고, 흡인폐렴이나 요로감염 등의 증상도 흔히 동반되기 때문에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
집중치료실에서 초기 치료를 마친 후에는 재활치료를 통해 신경계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 마비 상태에 대한 심리적 지지와 저림이나 근육통 등 다양한 통증에 대한 약물치료도 필요하다. 기능이 모두 회복된 뒤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적인 통증이나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급성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발병 6개월 이후에는 약 80%의 환자가 부축을 받고 걸을 수 있는 정도로 호전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에서는 보행 장애 등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사망률은 5% 안팎이다.
동아대병원 윤별아 교수는 "길랭-바레 증후군은 평소 질병이 없던 건강한 사람에서도 발병하고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다"면서 "신경계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려면 최대한 신속하게 정확한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이어 "감기나 설사 증상 이후에 손발 저림이나 전신위약을 동반한 보행장애가 발생하고, 이와 같은 증상이 진행하는 경과를 보인다면 즉시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