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도로의 주인은?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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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연제구 거제동 8차로 아시아드대로 횡단보도. 반도 못 건넜는데 녹색불의 남은 시간이 빠르게 줄어든다. 걸음을 재촉한다. 겨우 건넜을 때 남은 시간은 5초 이내다. 항상 아슬아슬하다. 노인들은 종종걸음으로 건너기 일쑤다. 학원 밀집 지역이라 아이들의 왕래가 잦다. 가끔 뒤늦게 횡단보도를 건너던 몇몇 학생들이 빨간불로 바뀌고 나서야 급히 뛰어온다. 그럴 때마다 차들은 이내 경적을 울린다. 집 근처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종종 겪는 일이다.

자동차의 증가는 우리 사회에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도로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고 보행자는 종종 방해 요소로 여겨진다. 도시의 모든 구획에서 사실상 자동차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다 보니, 보행자의 길은 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특히 어린이나 노인, 장애인 같은 보행 약자에게는 6~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보행 신호 시간이 너무 짧다. 건강한 성인 기준으로도 녹색불이 켜지자마자 걸어야 겨우 건널 수 있는 곳이 많다. 보행자 사고는 길을 건너는 동안 종종 발생한다. 보행 약자들이 단숨에 걷기 힘든 도로의 횡단보도에는 길을 건너는 도중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보행섬’이 그래서 필요하다. 이러한 장치는 보행자 안전은 물론이고 원활한 차량 통행에도 도움이 된다.

근래 노인 보행자의 교통사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2021년 9893건이었던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가 2022년 1만 435건, 지난해는 1만 921건으로 늘어났다. 이 중 사망자는 2021년 601명, 2022년 558명, 지난해 550명으로 최근 3년간 매년 500명 넘는 노인이 보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11월 11일은 대중적으로는 빼빼로 데이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보행자의 날이기도 하다. 정부는 사람의 두 다리를 연상시키는 숫자 11에 주목해 2010년부터 이날을 보행자의 날로 지정해 보행 안전을 강조하고 있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길의 중앙을 차에 넘겨주고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그렇다고 해서 도로의 주인이 자동차일 수는 없다. 도로는 자동차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보행자 역시 도로를 안전하게 이용할 권리가 있다. 안전하고 편리한 보행 환경은 모든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다. 보행자의 날을 맞아 무엇보다 보행 약자들이 마음 편히 걸을 수 있는 도시 환경과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길 기대해 본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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