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 책임 인정된 형제복지원 피해자 구제 시급하다
‘부당한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 규정
손배판결 불복 정부에 피해자 고통 가중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의수 씨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김 씨는 국가를 상대로 한 형제복지원 관련 손해배상 항소심에서 최근 승소한 피해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알려진 바로는, 김 씨는 정부가 자신의 승소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결국은 상고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매우 힘들어했다고 한다. 지난 1심과 항소심에서 다른 데도 아닌 국가를 상대로 지난한 소송전을 벌여 왔는데, 그런 고통을 또다시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몹시도 두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죽했으면 목숨을 버리려 했을까 생각하니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
김 씨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한 건 2021년 5월이었다. 1심 판결은 그로부터 2년 7개월이 지나서야 나왔다. 판결 내용은 ‘피해자 수용 기간 1년당 8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정부는 당시 “항소하지 말아 달라”는 김 씨의 호소를 외면하고 결국 항소했다. 항소심 판결은 지난 7일 나왔는데,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이 옳다고 결론지었다. 항소심 판결이 나기까지 정부는 공소시효가 끝났다거나 배상 인정액이 너무 높다거나 피해 증빙 자료를 믿기 어렵다는 등 갖가지 이유를 들며 김 씨를 압박했다. 정부의 그런 태도에 김 씨가 느꼈을 실망과 좌절, 특히 국가에 대한 불신은 감히 상상하기 힘들 테다.
김 씨의 진술에 따르면 김 씨는 11살이던 1984년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3년간 폭행과 강제노역 등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그로 인한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으며, 퇴소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고 괴로워했다. 지난 소송 과정에서 제출된 김 씨의 진단서에는 ‘공포, 악몽과 무기력감, 좌절감, 자해 충동, 대인관계 기피, 다발성 통증을 동반한 만성 우울을 호소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는 그런 김 씨에게 위로는커녕 오히려 소송을 통해 2차, 3차 가해를 입혔던 셈이다. 김 씨는 항소심에서도 소송을 끝내 달라고 호소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1987년 부랑자 선도를 명목으로 시민을 불법 납치·감금해 인권유린을 자행한 사건이다. 2022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를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했다. 사법부의 잇단 국가 배상 책임 인정은 그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가 항소에 이어 상고에까지 소송을 이어가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 인권 보호는 정부의 최우선 책무일 테다. 그렇다면 진실화해위의 결정과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김 씨 같은 이들이 늦게나마 한을 풀 수 있도록 피해 구제에 시급히 나서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