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산분장(散粉葬) 허용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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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문가가 조상의 분묘를 놓고 무려 250년 동안 소송전을 벌인 일이 있다. 18세기 후반 영조 때, 고려의 시중을 지낸 윤관(?~1111) 장군과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1593~1662)의 후손들이 묘역을 둘러싸고 벌인, 이른바 산송(山訟)이다. 산송은 말 그대로 산과 관련된 소송이지만 조선 시대엔 특히 묘지 소송을 의미했다.

산송의 대략은 이렇다. 윤관 장군이 세상을 뜨고 긴 세월이 흐르면서 분묘의 위치가 묘연해 후손들이 정확한 위치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옛 기록을 근거로 한 지역을 살피다가 묘갈(무덤 앞에 세우는 둥그스름한 비석)을 발견했는데, 하필이면 그 위치가 심지원의 묘 바로 아래쪽이었던 것이다. 윤씨가는 심씨가에 묘 이장을 요구했고, 심씨가는 이를 거절했다. 이후 두 집안의 산송은 영조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가 2010년에야 윤씨가가 이장 부지를 제공하고, 심씨가가 이를 수용하면서 250년 만에 마무리됐다. 김경숙 지음 〈조선의 묘지 소송〉 참조.

조상의 묘역을 목숨처럼 여겼던 조선 시대에는 이처럼 산송이 흔했다. 묘역을 돌볼 후손이 많은 데다 또 주로 인근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회 구조와 경제 환경이 천양지차인 요즘엔 딴 나라의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사실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묘지 자체가 큰 골칫거리가 됐다. 매장 묘 대신 납골묘나 봉분이 없는 평평한 평장이 활성화한 것도 후손들의 간편함 추구와 국가 차원의 토지 이용 효율화가 맞물린 결과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또 하나의 간편한 장례 방식이 추가된다. 산이나 바다 등에 유골을 뿌리는 산분장이 법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그동안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어정쩡했지만 내년 1월 24일부터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묘지, 화장 시설, 봉안 시설, 자연장지 내 특정 장소나 해안선으로부터 5㎞ 떨어진 해역(수산자원보호구역 등 제외)에 화장한 유골을 뿌릴 수 있게 됐다.

정부로서는 포화 상태인 봉안 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후손으로서는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아 향후 묘역 관리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맨몸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가뭇없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니 요즘 말로 ‘쿨’한 방식이다. 다만 아무런 흔적이 없으니 추모할 장소나 대상이 없다는 허전함은 감수해야 할 듯하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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