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제연구원 최정윤 위원“녹색 강박과 성과 위주 채권 모두 경계해야”
대표적인 국내 학술 논문 정보 색인인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재된 녹색채권 관련 논문은 21건에 불과하다. 논문의 일부로 언급하거나, 국외 시장을 중심으로 연구한 것까지 포함한 것이다. 국내 녹색채권를 주된 내용으로 다룬 건 5건 남짓이다. 녹색채권의 규모나 사회적 관심에 비하면, 학술적으로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는 수준이다.
2023년 4월 등재된 ‘E.S.G. 제도 구축의 관점에서 본 그린워싱 현황과 법제개선 방안’은 희소성이 높은 논문이다. ESG 금융 관련 연구는 대부분 경제적 가치를 살피는데, 이 논문은 국내 녹색채권을 중심으로 그린워싱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학술적으로 거의 다뤄지지 않은 주제다. 한국법제연구원 ESG법제팀 최정윤 연구위원은 이 논문의 제1저자다.
- 한국법제연구원 ESG법제팀은 어떤 연구를 하는 곳인가?
2019년부터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연구해 오고 있다. EU를 비롯한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 규범을 소개하고 분석하고 있다. ESG 제도 구축을 위한 정부의 과제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런 연구는 지난해 3월 발족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ESG 연구단과 함께 더 본격적으로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 플랫폼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글로벌 규제 동향의 국내법 체계 부합성 연구를 통해 연구 방법론을 다각화하고, 국제 경쟁력이 있는 한국 산업의 전환기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한국형 녹색채권 지침서(가이드라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가이드라인은 녹색채권 발행절차를 명료하게 하고, 발행자의 편의성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개정돼 시행되고 있다. 적합성 판단 절차와 외부검토기관의 등록제도를 신설해, 채권의 투명성과 전문성 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추가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지침서이다. 법적 효력이 있다기보다는 규제의 한계를 내재하고 있는 문서 형식이다. 우선 녹색채권 지침서에 따르더라도 워싱의 정의와 판단 기준 등이 여전히 모호하다. 다른 ESG 채권과의 차별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구별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유기적이거나 통합적인 정책 방향이 기술되어 있지 않다. 검증기관을 포함해 투자자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실제로 해당 채권의 운용 현황을 추적해 파악하기엔 일정한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이 지침만으로 워싱을 방지하는 충분한 조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소수의 신용평가사들이 외부검토를 전담하고 있는데, 전문성이나 발행사와의 관계 등에서 충분한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외부검증제도는 지속가능성 공시의 제도화 과정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하는 절차다. 그럼에도 종합적, 체계적인 제도적 로드맵 속에서 일정한 사회적 합의로 그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사실 신용평가사 이외 당장 외부검토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과 전문성이 있는 기관 또는 전문가를 지정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신용평가 제도와 유사한 수준까지 외부검토 효과가 나타난다면, 그것도 상당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럼에도 제도 신설초기에 결정된 사항들이 별다른 연구나 고민 없이 그대로 고착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신용평가사들이 가장 적절한 권위를 가진 보고서 제출자 또는 외부검증자인지에 대해서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충분하지 않았다. 워싱 여부를 포함해 지속가능성 공시와 관련된 전체 과정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자격과 기관의 기준을 보다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녹색채권의 규모를 키우는 것과 워싱을 방지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해 보인다.
녹색채권이라는 용어와 실무는 이미 어느 정도 정착한 제도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ESG채권 중에 사회적채권의 발행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녹색채권 비중은 10% 안팎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워싱을 방지하거나 규제하기 위한 작업이 지금보다 더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결국 투자자의 이익을 어느 정도 회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채권의 본질이기도 하다.
시장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기 위한 강력한 규제와 워싱에 대한 책임 부여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의 가치 평가도 동반되어야 한다. 여러 고려 없이 무조건 녹색채권 발행을 강조하고 무리한 채권 발행이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시장에서 워싱을 조장하고 과열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녹색채권이 워싱 우려를 씻고, 시장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방향을 제사한다면?
사실 녹색채권을 비롯한 지속가능한 채권 등은 서구 선진 자본시장에서의 끊임없는 요구 속에서 국내에 도입된 측면이 있다. 우리 자본시장의 재정건전성을 고려해도, ESG 비중과 제도적 운영을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
현재 시장은 채권의 이름 정도에서 녹색인지 여부를 가늠하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행된 채권에 대한 워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는 물론 채권 발행 시점 이외에도 중간중간 주기적, 또는 간헐적으로 권위 있는 주체에 의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일단 녹색 채권 등에 대한 그린워싱이 발생한 경우라면, 최대한 엄정하게 대처하여 제도적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 동시에 무분별한 성과 위주의 녹색채권 발행을 지양하고, 과도한 녹색에 대한 강박 역시 줄여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 시장의 건전성과 투명성이 기초부터 차곡차곡 쌓일 수 있다.
-녹색채권을 넘어 ESG 제도 전반에서 균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SG 제도화 구축 과정에서 객관성과 투명성, 전문성이 제고될 필요가 큰 만큼 현재와 같이 특정 이익집단이 새로운 제도화 과정 속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ESG 가 환경, 사회, 거버넌스 전반을 아우르는 아젠다라는 관점에서 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전문성 역시 강화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나 일부 기관들의 접근하는 제도화 방식만으로는 중장기적인 전략 수립이 쉽지 않을 것이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