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지켜 주지 못한 1020, 민주주의 지키려 유쾌한 반란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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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은 왜 거리로 나왔나

채 상병 사건·이태원 참사 비롯
또래 잃은 이들 집회 주역으로
반성 없는 대통령에 분노 쌓여
비판 발언에 거리낌 없는 세대
K팝·응원봉·재치 있는 깃발 등
장벽 낮춘 집회 문화도 한몫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부산 부산진구 전포대로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부산 부산진구 전포대로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 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전국적인 집회의 주역이 10대와 20대 청년들이었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들은 앞다퉈 발언대에 올라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민주주의의 본질이 참여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고, 놀이가 가미된 재기발랄한 시위 방법을 동원하며 머뭇거리던 기성세대의 동참도 이끌어냈다.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불러냈을까?

1020세대의 적극적 참여 열기를 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젊은 세대가 포함된 사건들을 겪으며 형성된 경험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분석이 있다. 특히 20대의 경우 ‘세월호 참사’ ‘채 상병 사건’ ‘이태원 참사’ 등을 겪으며 비슷한 나이의 또래를 잃는 경험을 했다. 여기에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경험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슈에도 낯설지 않았다.

실제 전국적으로 진행된 윤 대통령 탄핵 집회에는 10~20대의 참여가 활발했다. 집회에 참가한 10대, 20대들은 “참여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4일 부산 집회에 참석한 중학교 2학년 배 모(14) 군은 “대통령이 잘못된 일을 사과하지 않아 실망했다”며 “집회에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배 군은 이날 초등학생 3명과 함께 무대 공연에 맞춰 춤을 추며 집회 맨 앞줄을 지켰다. 부산에 사는 중학교 1학년 김나현(13) 양은 “국회의원들이 1차 탄핵 투표에서 퇴장하는 걸 보고 화가 나서 집회에 왔다”며 “역사의 한 장면 속에 있다는 게 뭉클했다”고 밝혔다.

1020세대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집회에 적극 참여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0~20대는 사회적 의제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세대이기에 이번 탄핵 집회에서도 주축이 된 것으로 보인다”며 “젊은 세대는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해석했다. 지난 8일 집회에서 자신을 ‘부산의 딸’이라 소개한 고등학교 3학년 A(18) 양이 “교과서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지켜지지 않는 정권을 보고 저와 제 친구들은 분노했다”며 “대통령이 고3보다 삼권분립을 모르고 어떡하냐”고 외치자 집회 현장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1020세대는 사회적 이슈에 민감한 데다 자신의 삶과도 연결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젊은 집회 참여자들은 ‘채 상병 사건’ ‘이태원 참사’ 등 젊은 세대의 희생이 빚어진 사건들에 예민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지 모(23) 씨는 “군대를 다녀오면 ‘채 상병 사건’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책임을 미뤄 꼬리 자르기 하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높은 참여를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과거 촛불집회에도 젊은 세대가 참여했지만, 여성들 참여율이 도드라지는 게 이번 집회에서 주목할 점”이라며 “특히 2030 여성은 여성혐오 범죄 묵인 등으로 여당에 반감이 컸는데 친숙한 팬클럽 문화가 어우러지며 현재 응원봉 집회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젊은 세대들의 적극성과 아이디어는 집회 문화 변화마저 이끌어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만두노총 군만두노조’ 깃발을 든 김세림(27)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당시 아무 말이나 붙인 깃발이 많았다”며 “특정 세력 부름을 받고 시위에 나온 게 아니라 민주 시민으로 참석한 걸 알리고자 제가 제작한 깃발을 들고 나왔다”고 밝혔다. 이날 여의도에선 탄핵 가결안이 통과된 후 응원봉을 든 20대들이 1990년대 노래 ‘캔디’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도 연출됐다. 현 시대를 대표하는 데이식스 노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등이 흘러나오자 목 놓아 따라 부르는 20대도 많았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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