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중일러와 회담 시사한 트럼프, 외교 공백 없애라
한국만 언급 누락 ‘패싱’ 현실화 우려
여야가 합심해 리더십 부재 대처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6일(현지시간) 당선 뒤 첫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을 포함해 중국·일본·러시아 등 한국 주변 주요국 정상들과의 회담 가능성을 거론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조 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거리 미사일 사용 승인을 “큰 실수”라고 비판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내가 잘 지내는 또 다른 사람”이라고 다시 한번 친분을 과시했다. 하지만 동북아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 패싱’이 현실화하는 건 아닌지 우려를 낳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리더십 부재에 빠진 한국으로서는 외교·안보 분야의 공백 최소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트럼프 당선인의 이날 기자회견 내용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교·안보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현안들이 망라됐다. 취임을 한 달여 앞두고 톱다운 방식의 정상외교와 관세를 무기로 각국과의 협상에 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화하겠다고 밝힌 부분이 눈에 띈다. 휴전 협상을 계기로 북한과의 직접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동 가능성을 염두에 둔 우호적 발언들도 쏟아졌다. 반대로 한국은 언급 대상에서 빠지면서 외교·안보 협력 대상에서 소외되는 모양새다.
트럼프 당선인의 기치는, 주지하다시피 ‘미국 이익의 극대화’다. 여기에 부합한다면 중국·러시아·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기존 정책 기조와 어긋난다 해도 트럼프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 목표가 될 게 분명하다. 문제는 이런 대북·대중 정책 조율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이 반영될 통로는 막히고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지금 리더십 공백에다가 개인적 친분을 중시하는 트럼프 측과의 접촉마저 쉽지 않은 설상가상의 상황이 겹쳐 있다. 각국은 협상력 강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한국은 트럼프 정부와의 관계에서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져드는 형국이라 외교·안보에 대한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는 어떤 상황에서도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한반도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데다 분단과 북핵 문제가 상존하는 지정학적 여건 속에 놓여 있다. 치밀하고 정교한 대외 협력 정책과 정세 관리 능력이 없으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이 역사의 경고다. 그래서 정상외교의 정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여야 정당이 머리를 맞댄 국회의 통제 아래 외교·안보 정책이 공백 없이 꼼꼼하게 준비되고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 정부·민간 등 다양한 통로를 총동원해 트럼프 측과의 긴밀한 소통·협의 채널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정치적 입장을 넘어 국익이라는 대승적 관점에서 모두가 합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