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매일 힘든 이들 만나는, 사회복지하는 '연아' 신아현 작가
24년째 부산서 사회복지 업무
민원인 이야기 담은 에세이 펴내
"나만 겪은 특별한 경험 아니야
사회복지하는 모든 이의 일상"
“사회복지 공무원의 호는 ‘연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민원인들이 만만한 여자 사회복지 공무원을 부를 때 많이 쓰는 호칭이라는 ‘이년아, 저년아’에서 유래한 말이죠.”
최근 에세이집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를 펴낸 신아현 작가는 부산에서 24년째 사회복지 일을 하고 있는 ‘연아’이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신 작가가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진 건 대학 3학년 때였다. “휴학하고 사회복지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어요. 사실 ‘나는 왜 불행할까, 좋은 일을 하면 행복해질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막상 해 보니 일도 재미있었고, 사회복지사들에게 감동도 받았어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겼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대학을 두 번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IMF로 취업이 어려웠고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결론을 얻은 후 사회복지학과 편입 시험에 기적처럼 추가 합격했다. 졸업 후 복지관을 거쳐 29살에 사회복지 공무원이 됐다.
꿈을 이뤘지만 사회복지사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매일같이 ‘힘든’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고, 가난, 질병, 실직, 가족관계 단절, 이혼, 폭력 등 아픈 사연을 맞닥뜨렸다. “무작정 소리 지르고, 욕하고 협박하거나, 술에 취해 오는 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다른 사람과 교류하거나 대화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렇더라고요. 그걸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여전히 무섭긴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된 삶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부분을 이해하죠.”
신 작가는 2021년 사회복지 현장 글쓰기 교육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꾸준히 써 왔던 일기와 머릿속 기억을 전부 쏟아냈다. “처음엔 책을 낼 생각이 없었어요. 알려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현직 공무원이라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하지만 내 글을 본 몇몇만이라도 사회복지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숨을 위협하며 욕하던 민원인을 떠올리고, 아물지 않은 상처를 끄집어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속에 머물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사연이 다시 자신 앞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 작가는 “내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글쓰기”라고 말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을 씁니다. 말은 하고 나면 후회가 될 때도 있지만 글쓰기는 달라요. 아무 얘기나 다 할 수 있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가 해주고, 못한 말은 또 하면 돼요.”
신 작가는 “책에 쓴 일들은 나만 겪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며 “모든 사회복지 공무원이 이렇게 일한다”고 강조했다. “한 독자가 ‘그들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민원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었구나’라는 리뷰를 남겼더라고요. 민원인들에게 우리는 제도고 법이고 지침이었구나,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살을 쏘았구나 싶었습니다. 늘 위협에 시달리는 사회복지 공무원에 대한 보호 시스템이 절실하지요. 그래도 민원인들이 이곳을 찾아오기까지 발걸음의 무게를 생각해요. 내 아픔을 남에게 털어놓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출판사 ‘데이원’ 대표와의 만남 이야기도 전했다. “투고를 하고 11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중 데이원 대표가 원고를 보자마자 바로 기차표를 끊고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자신의 어린 시절, 부모님, 옆집 이야기가 다 들어 있더래요. 잊고 싶었고, 또 억지로 잊고 살았다고요. 계약을 떠나서 이 책을 응원하고 싶으셨대요. 〈세이노의 가르침〉 등 경제 분야와 자기계발 서적을 주로 내는 출판사가 왜 제 책을 선택했냐고 물으니 ‘사람에 대한 이해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단 걸 깨닫게 했다’고 답하셨어요.”
신 작가는 책의 인세 일정액을 초록우산 부산지역본부의 르완다 해외아동 교육지원사업에 기부했다. “책을 낸 게 돈을 벌고자 한 일은 아니었고요, 나와 남의 아픔을 담은 얘기잖아요. 이 책으로 아픔이 있는 사람을 돕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에는 그의 따뜻한 소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민원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저 사람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왔을까 상상을 합니다. 제가 겪은 경험과 상상을 더해 어렵고 힘든 과정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아픈 부분을 공감할 수 있도록요.”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