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는 30년된 중구 영주2동 맏며느리 모임입니다”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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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며느리 7명, 두달 한 번 모임
국내 여행 6번과 내년 첫 해외 여행 준비
전 미용실 원장, 족발집 주방장 등 직업도 다양
마구잡이로 시댁 흉을 보거나 힘들고 속상한 일을 쏟아내지 않아

영주2동 맏며느리 회원은 “우리 모임은 살아 있는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맏며느리가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큰 가르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영주2동 맏며느리 회원은 “우리 모임은 살아 있는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맏며느리가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큰 가르침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자주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이었어.”

최근 부산 중구 부평동 한 식당에 별난 모임의 60대 여성 6명이 모였다. 메뉴를 주문한 후 한 명이 최근 유머라고 모두에게 알려줬다. 이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유머도 여러 개 알려주며 한바탕 웃었다.

7명의 주부로 구성된 ‘맏며느리팀’. 이들은 부산 중구 영주동 지역으로 시집을 온 여성이다. 모든 회원들이 영주동 토박이들을 남편으로 두고 시부모를 모시는 맏며느리들이다. 이들이 모임을 구성한 것은 1994년 시부모들의 친목계에 합류하면서부터다. 30년이 지나 지금은 2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지만 모임에는 참석한다. 회비는 월 2만~3만 원이다. 단체 여행을 갈 때면 특별 회비 5만 원을 모은다. 이들은 여행을 가 관광지 입장료가 비싸다고 출입구 앞에만 갔다 서로 토닥거리다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또 돌아오는 길에 기찻표값을 아끼려고 절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오기도 한다. 그야말로 ‘짠순이 아줌마’다. 상조 때는 50만 원의 경조비도 나눈다.

미용사 출신 2명, 피자가게, 족발집 주방장, 요양보호사, 새마을부녀회 회원, 백화점 점원 등 직업도 다양하다.

이 모임엔 회장이 없다. 2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맡는 총무만 있다. 이번 총무를 맡은 하수연(생활지원사), 김순옥(전 피자가게 사장), 장복희(전 미용실 원장, 호텔 종업원), 배숙자(족발집 주방장), 전옥임(백화점 매니저), 백말연(영주2동 새마을부녀회장), 황미숙(동화작가) 씨다.

30년 전 20대 영주동으로 시집을 와 긴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회원은 이날 식사 후 근처 커피숍에서 첫 해외 여행을 베트남으로 가기 위해 회비와 일정 조정을 했다. 각자 여행 경비 아끼기와 회비 충당 등 ‘알뜰한 똑순이’의 노하우들로 열띤 논쟁도 있었다.

이들 모임 시작은 1992년 봄이었다. 한 회원이 시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간암 판정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향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달리하신 것이다. 대부분 집에서 장례를 치르던 시절이었다.

그는 “정말 난감했다. 집엔 임종을 지킨 사람뿐이라 사잣밥을 할 사람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동네 아주머니를 찾아가서 부탁했던 그 순간이 오래도록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며 “결혼한 이후로 어떤 모임도 안 하던 내가 ‘맏며느리 회원 모집’을 나섰다”고 전했다. 영주 2동에 거주하는 맏며느리, 삼 대가 한집에 살고 있어야 함과 연락처를 적어 동네 전봇대에 붙였다.

“곧장 6명의 맏며느리가 모였습니다. 맏며느리 모임의 취지는 회원의 시부모가 돌아가시면 조의금을 전달하고, 상갓집의 일을 도와주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임이 마치 부적이라도 되는 듯이 처음 10여 년 동안은 돌아가시는 분이 한 분도 없었고,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칠순, 팔순, 시누이 시동생의 결혼식만 있었다.

“설날엔 마을회관에 모여서 떡국을 끓여 어르신들께 세배하고, 서울에서 결혼식을 하는 회원이 있으면 관광버스 안에서 하객들에게 일사불란하게 잔치 음식을 나눠드리기도 했습니다”,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제사가 끝난 다음 날엔 동네 어르신을 모셔서 제사음식을 대접하고, 거동 못 하는 어르신에게는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 드렸습니다”, “누구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 누구네 제사가 언제인지를 알 정도로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맏며느리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사람끼리 모였지만, 마구잡이로 시댁 흉을 보거나 힘들고 속상한 일을 쏟아내지 않았다.

“한 동네 살아서 다 아는 이야기를 이 좋은 날 말해 뭐해?”

이들은 속상한 이야기나 속 터지는 말보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어디서 주워들은 유머를 말하며 와하하! 웃곤 한다.

1994년 4월에 시작한 맏며느리 모임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아 내년 3월에 3박 5일 베트남 하롱베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여행은 그동안 하동, 단양, 여수 오동도, 춘천 남이섬, 거제 외도 등 5곳을 갔다 왔다.

“소박하나 빈곤하지 않고, 흰머리와 잔주름이 늘어가는 만큼 마음의 여유를 찾는 우리 맏며느리회는 아직 여여하다”고 자랑한다.

이들은 이날 모임에서 한 회원이 이제 우리도 30년 세월 만큼이나 제대로 봉사를 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의지할 곳 없이 쓸쓸히 말년을 보내는 동네 홀몸 어르신을 위해 봉사하자는 제안에 모두 동의했다.

“여러 회원들과 어울려 차와 밥 먹으러 이집 저집 다녔는데 그렇게 수십 년을 보내고 나니 회원들과의 만남이 무의미한 수다로만 끝나는 것 같아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어떻게 하면 모임을 의미 있게 바꿀지 고민했죠.”

이날 모임에서 한 회원은 ‘나에게도 득이 되고 이웃에게도 득이 되는 활동을 하자’고 회원들과 의논하고 봉사 활동을 추진하게 됐다.

“저 정도 나이가 되면 문화센터 나가고,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그러면서 살잖아요. 그런 건 순간순간은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크게 의미있는 삶은 아니지요.”

한 회원은 중증 치매 시어머니 병시중을 8년 가까이 해왔다.

“우리 모임은 살아 있는 교육입니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맏며느리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큰 가르침인 것 같아요.”

또 다른 회원은 “소소한 마음 나누는 도움의 손길은 보람도 크지만 자신의 삶을 살찌우는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말했다.

크고 작은 행사에 차 봉사와 이발 봉사, 각자 자원봉사를 하다 이제는 조직적으로 하고 싶단다.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천생 맏며리들이며, ‘동네 아줌마’들이 아니라 ‘동네 천사’들이다.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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