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족 돌보는 아동·청소년… 사회적 돌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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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가사·간병·생계 홀로 감당
실질적인 관심·지원으로 희망 안겨야

전국적으로 20만 명이 넘는 영 케어러(가족 돌봄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일보 DB 전국적으로 20만 명이 넘는 영 케어러(가족 돌봄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산일보 DB

국내 10~20대 ‘영 케어러’ 인구가 추정치이긴 하지만 전국적으로 2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 케어러는 중증질환이나 장애, 치매 등을 앓는 조부모·부모 등을 간병하고 생계를 책임지는 ‘가족 돌봄 아동·청소년’을 가리킨다. 부산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 영 케어러만 해도 2만~3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 나이에 어려운 가정형편까지 겹쳐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관심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칭찬과 연민의 대상만 될 뿐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의 가장 구석진 곳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사회적 환기의 계기가 필요한 때다.

고달픈 삶의 무게를 짊어진 영 케어러들의 어깨는 무겁기 그지없다. 〈부산일보〉 취재 내용을 보면, 거동이 불편한 가족을 돌보고 식사와 약제를 챙기는 건 기본이고 집안 청소, 빨래, 생계 책임까지 도맡아야 하는 일상은 사실상 ‘끝이 안 보이는 굴레’임을 알 수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이들이 돌봄에만 할애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4시간, 주 32.8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안타까운 건 상당수가 학업과 진학을 포기한 채 아르바이트나 취업 전선에 나서야 하는 현실이다. 성인이 된다 해도 이런 고충이 해소된다는 보장은 없다. 한 마디로 ‘꿈이 저당 잡힌 삶’,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 케어러들이 사회적 관심 밖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에 대한 법적, 정책적 인지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실태는 제대로 파악된 적이 없다. 영 케어러에 대한 대응 수준을 1~7단계로 분류하는 국제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가장 낮은 7단계(무반응 국가)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주목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 반짝 관심이 환기될 정도에 그친다. 2021년 대구 지역 20대 청년의 ‘간병인 살인 사건’이 잠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사회의 시선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숨겨진 집단’ ‘잊힌 최전선’으로 불리는 것은 그런 이유다.

영 케어러들은 사회가 감당해야 할 돌봄을 홀로 짊어진 아이들이다. 그럼에도 사회로부터 이렇다 할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에게 가사 노동과 간병·생계 부담은 가족에 대한 애정과 보살핌의 문제를 넘어서는 일이다. 어린 나이에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교육의 기회나 인간관계 등을 누리지 못하는 상실감도 무시하지 못한다. 사회가 이들을 보듬지 못한다면 향후 여러 가지 또 다른 사회 문제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적극 껴안아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 영 케어러들도 마땅히 미래 세대의 소중한 일원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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