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계엄의 정황’…여 ‘국정 공백’ 프레임으로 방어 될까
검경 수사에서 윤 대통령 오랜 기간 계엄 구상한 사실 드러나
당일 “총 쏴서 들어가” 발언도, ‘북풍’ 시사한 노상원 수첩 충격적
국힘, 한덕수 탄핵 이후 “정부 붕괴 시도하나” 반격 불구
분노한 여론 향배 바꾸려는 프레임 전환 쉽지 않은 상황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검·경·공 수사가 진행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당시 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야당 경고용 계엄’이라는 설명과 달리 오래 전부터 준비했고, 계엄 당일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의 계엄 해제를 막으라고 지시한 정황도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야권의 탄핵 속도전에 여권이 ‘국정 공백’ 프레임을 내세워 지연 전략을 쓰고 있지만, 이런 사실들에 분노한 여론의 향방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최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 기소하면서 작성한 공소장에는 지난 3일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이 직접 일선 지휘관들에게 지시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윤 대통령은 당시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직접 전화해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잡아들여, 불법이야, 국회의원들 다 포고령 위반이야”라고 말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윤 대통령은 또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도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4일 오전 1시 3분 이후에도 이 전 사령관에게 “국회의원이 실제로 190명 들어왔다는 것은 확인도 안 되는 거고”,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 이른바 ‘충암파’들과 최소 8개월 전부터 계엄을 준비한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올해 3월 말~4월 초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이들과 만나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처음 비상계엄 가능성을 언급했고, 8월과 10월, 11월에도 이들과 만나 정치인, 언론·방송계 및 노동계에 있는 ‘좌익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비상대권을 재차 언급했다고 한다. 그 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틀 전인 이달 1일 김 전 장관과 독대해 계엄 선포문,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초안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찰이 확보한 김 전 장관의 측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 속 기록도 충격적이다. 수첩에는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노조 인사, 판사 등 16명이 ‘수거 대상’으로 명시됐고 ‘사살’이라는 표현이 발견됐다. 이뿐 아니라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는 ‘북풍 공작’을 시사한 메모까지 나왔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윤 대통령 등에 대해 외환죄에 해당하는 일반이적죄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물론 김 전 장관 측은 수첩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은 지난 27일 야권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국정 공백 우려를 부각하며 ‘민주당의 입법 독재’에 대한 반격에 나선 모습이다. 당 중진인 나경원 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국무위원 1명이 남을 때까지 국민을 인질로 망국의 ‘오징어 게임’을 하려는가”라고 비판했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 대행 탄핵소추는 양아치 패거리 정치의 극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지연 시도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여권의 이 같은 프레임 전환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비상계엄 관련 수사에서 충격적인 내용이 속속 나오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지연하려는 의중을 버리지 않는 한 부정적 여론을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