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새해의 어두운 희망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이분법으로 나눠진 적대는 정치 아냐
성가시고 거친 ‘연성 내전’에 가까워
우리 정치, 권력 투쟁·기득권 고수 급급
정쟁 속 국민 몰아넣고 분열 가져와
실패 반복하고 국가 파괴하려 하지만
국민, 희망 쟁취하는 노력 다 해야
계엄령의 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사태라 지난 12월 3일의 심야는 차라리 한 차례의 악몽이었으면 좋았겠다. 그저 진땀을 흘리면서 시달리다 깨어나면서 사라지는 나만의 꿈이었다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터이다. 평온한 저녁에 국민을 향해 일격을 가한 폭거였기에 그 충격과 상처는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무방비 상태에 당한 폭력과도 같아서 깊은 내상을 입고서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그로부터 일상은 미세한 균열로 파열하면서 불안으로 일그러지고 있다. 신문을 뒤지고 뉴스를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고 정치권의 움직임과 사법기관의 탄핵과 내란 수사에 날로 예민해지고 있다. 문득 매천 황현의 절명시(絶命詩) 한 구절을 떠올리기도 하였는데 세상에 식자 노릇이 참 어렵다는 내용이다. 지사인 그에 결코 비할 바 아니나 범인으로서도 읽고 쓰는 일이 힘에 겨운 나날이다.
정치학을 모르는 일개 문인으로서 왜 정치가 실패하였는가, 또한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제도를 부정하게 되었는가, 그렇다고 폭력적으로 국가 기구를 동원해 반대자들을 몰아내려고 ‘예외 상태’를 조장하려 하였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정치는 경쟁과 대화라는 비폭력적 방식의 타협이라고 알고 있다. 이게 민주 공화정이 민의를 반영하는 체계이다. 그런데 이를 팽개치고 비상사태를 불러온 일은 명백한 정치의 실패이자 나아가 파멸이다. 1987년 6월 시민 항쟁으로 획득한 헌법 체제가 이토록 허약할 수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대통령 중심으로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까닭일까? 아니면 선출 권력이 관료 등 국가 기구를 철저하게 장악한 귀결일까? 관료주의가 민주주의에 역행할 가능성은 없을까? 일본의 젊은 실천 철학자인 아즈마 히로키는 관료형에 ‘정정하는 힘’이 결여한 사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만큼 관료주의적 권력이 또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
최근 한 모임에서 후배 비평가가 내게 서면엔 안 나가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탄핵 집회에 나가라는 독려에 가까웠다. 나도 빨리 이 정국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정치의 실패는 고스란히 시민의 고통으로 전가되며 시민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야 하는 계기를 형성한다. 본디 진정한 민주주의는 날마다 직선으로 대표를 뽑는 일이라고 말한 이가 있다. 그만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은 소중하며 모든 정성을 기울여 사용되어야 하는 법이다. 따라서 대의 권력이 사유화하거나 집단 독점화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이는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진 적대는 정치가 아니다. 성가시고 거친 연성 내전에 가깝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자기 집단을 절대화하는 편향이 적지 않다.
사회적 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뭐든 믿게 하는 경향을 초래한다. 미신에 기대거나 더 큰 권력에 의탁하게 한다. 이와 같은 나르시시즘적 세계 관계에서 나치 독일에서 보았던 파시즘과 같은 정체가 발동한다.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21세기 한국에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물리력으로 타자의 동의를 강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결코 한 개인의 성정을 원인으로 환원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내재한 퇴행과 반동의 기제가 내재해 있다는 발본적인 고찰이 있어야겠다. 물론 당장 할 일은 민주주의의 신속한 복원이지만 권력 분산에 관한 혁신적 논의가 뒤따라야 하는 필요가 있다.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정치는 무엇을 하였는가? 머잖은 장래에 한국 사회가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저성장, 저출생, 지역소멸, 사회 양극화, 청년 실업과 고령화 등의 문제가 화급한 과제이다. 여기에 기후 위기라는 근본 문제까지 더해져 있으니 말 그대로 복합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을 전문가가 아닌 내가 세세하게 알 길은 없으나 우리 정치가 이처럼 발등에 던져진 불같은 일을 다루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권력 투쟁에 몰입하고 기득권을 고수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는가? 노동, 인구, 복지, 지역, 교육, 기후, 안보, 외교 등 모든 영역에서 국리민복의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으면서 국민 분열과 국가 쇠퇴를 가져왔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웃 나라의 식민지를 겪은 우리가 일본을 추월하였다는 환호를 한 적이 엊그제 같다. 그러나 오늘은 선진국이 아니라 후진국이 되었다는 좌절감을 안는다. 우리의 대중문화가 세계적 위상을 얻었고 급기야 노벨문학상을 성취하였지만 이에 반해 정치는 실패를 거듭하고 국가를 파괴하려 하였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희망을 생각하는 희망을 강조했다. 그만큼 그저 낙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희망을 쟁취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때이다. 세상이 어두워도 희망은 여전하게 따뜻하고 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