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부산의 성장 경로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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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부산 경제 침체 경로의존 집착한 결과
전략산업 정책 성과로 이어지지 못해
광역시 출범 30주년 맞아 새출발해야

예전에는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들이 일반에서는 많이 유통되지 않았다. 오래전 대학 1학년 경제학원론 수업 시간에 기회비용이라는 용어를 처음 배웠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기회를 포기한 것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당시 그 용어는 대학 바깥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대화에서 기회비용을 언급하고 선택에 활용한다.

정보사회의 진전과 함께 경제학에서 개발된 개념들이 점차 일반으로 확산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근년에 들어와 자주 사용되기 시작한 경로의존과 회복탄력성이라는 말도 대학 바깥으로 나온 경제 개념의 예들이다. 움직이는 사물에는 관성이 있어서 움직이던 방향으로 계속 가려는 경향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경로의존이라고 한다. 기존의 경로에 집착하면 변화를 받아들일 기회를 놓친다. 그래서 때로는 기존 경로에서 벗어나는 유연성과 민첩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한편 위기나 충격이 왔을 때 거기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이 클수록 경제 생태계는 충격에 강한, 즉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물리학의 개념에서 유래한 이 용어들은 경제가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또 경제의 생태계는 건강한지를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연말을 앞두고 부산 경제를 생각하는 작은 세미나에 참석했다. 크게 보아 1980년대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부산 경제가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왜 확연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도 제대로 길을 찾지 못했던가 하는 것이 주요 주제였다. 내리막길을 걷게 된 핵심적인 원인은 기존의 길을 고집하였던, 즉 경로의존에 너무 집착했던 결과라는 의견에 많은 동의가 있었다.

합판과 섬유 그리고 신발과 같이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특화되어 있었던 부산은, 이미 좀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새로운 산업으로의 이행이 대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길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부산의 최대 산업이었던 신발업은 뒤늦게 1980년대를 통하여 대호황기를 맞았는데, 그 바람에 기존의 경로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욱 방해하였다.

그 대가는 매우 컸다. 1980년대 후반 들어 갑작스레 찾아온 신발업의 몰락은 기존 기업들이 새로운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까지 빼앗아 버렸다. 세미나에서 논의된 표현을 인용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침체가 아닌 부산 경제의 경로 이탈이었다. 기존의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침체의 근원이었다면, 그 이후 대안 없는 긴 추락은 경로 자체를 잃어버린 결과였다는 것이다.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부산이 처음으로 지역 차원에서 전략산업을 선정하고 육성하려고 하였던 것은 그만큼 경로 이탈의 충격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99년에 처음 나왔던 전략산업 정책은 10개의 산업을 부산의 대표 산업으로 선정하고 육성하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생각만큼 나지 않았다. 게다가 기술 발전의 패러다임 변화와 중앙정부의 지방산업 지원 정책에 맞추어 이후 네 차례나 개정이 있었고, 그때마다 전략산업들도 변화되었다. 당연히 집중도 되지 않았고 또 지원할 수 있는 자원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전략산업의 성과 또한 높을 수 없었다.

결국 큰 흐름에서 보면 오랫동안 부산 경제는 성장 경로에서 이탈한 후 아직 새로운 경로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의 지역내총생산이 전국 평균에서 자꾸 멀어지고, 부산 경제의 회복탄력성이 전국 평균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낮은 것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불안정한 성장 경로에 있기 때문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 연말 부산시는 여섯 번째 전략산업 육성 정책을 발표하였다. 부산 산업의 체계적 육성과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미래 신산업의 육성과 주력산업의 고도화 그리고 글로벌 도시 기반의 구축을 중심으로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5년 후인 2030년까지 질 좋은 일자리 100만 개, 지역 총수출 200억 달러, 시민 1인당 지역내총생산 4만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5년마다 갱신되어 온 전략산업 육성 정책이 이번에는 목표를 정말 달성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그러나 성장의 구체적 목표 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부산의 성장 경로를 다시 찾는 것, 이것이 장기적으로 부산 경제에는 더 중요하다.

부산이 광역시가 된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된다.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부산 경제는 기존의 성장 경로에서 이탈한 상태로 힘겹게 버텨왔다. 광역시 출범 30년이 되는 올해가 부산 경제의 성장 경로를 찾는 새로운 출발의 해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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