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태양광 실패, 바다에선 막자
김백상 해양수산부장
10여년 신재생에너지 단가 논쟁
미래 가치 생각 못하고 준비 부족
커지는 태양광 시장 중국이 잠식
해상풍력에선 실패 반복 막아야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곧 신재생 에너지의 세상이 올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하지만 2025년 지금도 여전히 원자력 발전은 국내에서 건재하다. 사고의 기억이 점점 옅어지자 원전 업계는 우수한 가성비를 거론하며, 원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으면서 싸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건 원전뿐이라고 설명했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신재생에너지를 지지하는 이들은 원전의 가성비가 우월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원전의 전기 생산 단가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태양광이나 풍력이 낫다고 주장했다. 의외로 논쟁은 상당히 치열했다.
얼핏 보면 전기 생산 단가 논쟁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들어간 경비와 전기 생산량을 비교하면 간단히 끝날 수 있는 논쟁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기 생산 단가라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자재 값을 비롯해 발전소 건설이나 유지 비용 등이 계속 변한다. 발전소 문제와 별개로, 전력망과 송출 시스템에 따라 발전 비용도 달라진다. 조건에 따라 전기 생산 단가가 다르니, 다들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만 선택해 주장을 했다.
이 과정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발전소의 경쟁력은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조건을 만드느냐에 따라 시장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장 조사 기관인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이 2018년 539억 달러(약 74조 원) 규모에서 2026년 3337억달러(약 457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엄청난 속도로 커지는 시장이다. 태양광 단가 하락도 가파르다. 2023년 3분기의 경우 전 세계 평균 태양광 모듈의 가격이 2023년 1분기에 비해 30~40%나 싸졌다. 기술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대량생산을 통한 규모 경쟁력도 한몫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이다. 전 세계 태양광 소재 점유율은 75~95%가 중국산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2019년 33.5%였던 중국산 셀 비중이 2023년 74.2%로 커졌다. 국산 셀 비중은 같은 기간 50%에서 다시 반토막이 났다.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태양광 시장이 커질 것을 예견하고 달려들었다. 다른 나라들이 보기에는 폭력적인 수준일 수도 있다.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남의 나라 시장을 무자비하게 잠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최상의 선택을 한 셈이다. 당장은 태양광 단가가 매력적이지 않아 보였지만 조건이 변하면 태양광이 더 주목을 받을 것을 알고 미리 행동했다. 지금은 그 과실을 누리는 셈이다.
태양광은 중국이 주도했지만, 아직 해상풍력 시장에는 독보적인 승자가 결정되지 않았다.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는 전 세계 해상풍력 누적 설치 용량이 2022년 63GW에서 2032년 477GW까지 늘 것으로 전망했다. 10년 만에 7배로 성장하는 것이다.
국내 시장의 성장세는 어쩌면 더 가파를 수 있다. 2030년까지 해상풍력을 14.3GW가 늘린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현재 해상풍력 발전량은 0.12GW에 불과하다. 14.3GW의 절반인 7GW만 달성해도, 5년 새 시장이 60배 가까이 커진다. 없던 시장이 새로 창출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럼 국내 해상풍력 시장의 과실은 온전히 우리에게 돌아올까. 우리 기업들이 해상풍력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부정적인 관측이 많다. 이 정도 시장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이 드물다.
해상풍력엔 터빈, 지지구조물, 변전소, 케이블 등 전문적인 하드웨어와 엔지니어링 기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해상풍력은 거대한 해저케이블로 송전망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를 설치할 수 있는 해양 기업은 국내에 매우 드물다. 자칫하면 외국 기업들이 들어와 잔뜩 돈을 벌어갈 수 있다. 대규모 공사가 줄줄이 잡혀 있는데, 당장 공사에 필요한 바지선 공급도 쉽지 않아 중국배가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이미 100조 원의 국내 해상풍력 시장을 중국산이 싹쓸이할 것이라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산업계가 해상풍력 시장에서 국내 지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태양광 시장의 실패가 바다 위에서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연스레 헛된 상상을 해본다. 만일 10여 년 전, 우리가 좀더 현명했다면 어떠했을까. 당장의 시장 상황과 가격 경쟁력만 따지지 않고 미래를 생각했다면, 지금 과실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시장 가치는 고정불변이 아니다. 조건에 따라 경쟁력은 달라진다.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면, 시장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