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부산은 진정한 부자 도시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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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부산 ‘사랑의 온도탑’ 100도 돌파 귀감
혼란 속 위축된 기부 분위기 극복 빛나

모바일 앱 등 접근·편리성 높인 게 주효
어려울수록 돕겠다는 시민이 원동력

나눔 실천해야 마음 넉넉한 참된 부자
온정 확산해 경제 한파·강추위 녹이길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 송상현광장. 이곳에는 ‘사랑의 열매’로 상징되는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해 12월 2일 세운 ‘사랑의 온도탑’이 우뚝 서 있어 눈길을 끈다. 이날부터 연말연시 두 달간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성금을 모으는 ‘희망 2025 나눔 캠페인’을 홍보하면서 모금 현황을 알려주는 설치물이다. 모금운동 기간 목표액의 1%가 모일 때마다 눈금이 1도씩 올라간다. 온도탑을 통해 그동안 누적된 모금 실적, 즉 온정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지난 13일 부산 사랑의 온도탑은 100도를 돌파하며 목표치 달성을 알렸다. 이날까지 모금액은 총 110억 7372만 원. 목표액 108억 6000만 원을 넘어서 사랑의 온도 102도를 기록했다. 부산의 100도 돌파는 전국에서 전남에 이은 두 번째 경사다. 부산 시민들의 나눔 열기가 전국 여느 지역보다 훨씬 뜨겁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이로써 부산은 최근 5년 연속 목표를 이뤄 냈다. 모금액도 2021 캠페인 105억 9300만 원, 2022 캠페인 112억 3400만 원, 2023 캠페인 113억 1100만 원, 2024 캠페인 123억 5300만 원, 16일 현재 107도인 116억 2000만 원 등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인다.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 같은 성과는 이번 나눔 캠페인 초기, 뜻밖에 닥친 초대형 악재를 극복한 결과여서 더욱 빛난다. 모금을 시작하자마자 12·3 비상계엄이 터지는 바람에 전망은 암울했다. 계엄 사태가 곧바로 나라 전체에 혼란한 정국을 초래했고 경제와 민생에 악영향을 끼쳐 기부 심리마저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돼서다. 실제로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온정을 전하려는 시민들의 모금 참여 분위기는 예년에 비해 많이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지난달 16일 기준 부산 모금액은 27억 7900만 원으로 2023년 같은 기간보다 5억 2400만 원 줄었다. 이날 사랑의 온도는 전년 동기 대비 4.8도나 떨어져 겨울나기가 고달픈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오랜 경기 침체에다 탄핵 정국과 복합적 경제 불안까지 겹쳐 형편이 어려워진 시민들이 소외계층을 챙길 여유를 갖기 힘들었을 테다.

이에 모금회 측이 캠페인 홍보 강화와 함께 모금 방법을 다양화한 게 목표 달성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기부의 접근성과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BNK부산은행과 협력한 모바일뱅킹 앱 등이 지역사회의 기부 문화가 꽁꽁 얼어붙는 걸 막는 데 기여했다. 이 앱을 통해 누구라도 소액 기부가 가능해져 사랑의 온도계 눈금이 쭉쭉 올라가는 쪽으로 바뀔 수 있었다는 평가다.

한데, 이보다 더 확실한 원동력은 힘든 처지에도 모금회의 호소에 적극 호응한 시민들에게 있지 싶다. 어려울수록 가진 것을 더 어려운 계층과 나누려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 말이다. 모금회에 성금을 기탁한 다양한 천사들의 사연은 자신보다 더 힘겨운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나마 안기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어 가슴 뭉클하다. 특별한 사연이 없는 기부라도 십시일반의 심정,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선행이다.

게다가 매우 열악한 부산경제 사정을 떠올리면, 전국 최고의 기부 열기를 이어가고 있는 시민들의 크고 작은 온정은 정말로 경이롭고 존경스러울 정도다. 부산은 기업 실태와 생산성, 소득, 고용률 등 여러 경제 지표가 전국 최저 또는 최악 수준일 만큼 침체돼 있기 때문이다. 각종 서비스업 비중이 높지만, 내수 부진으로 극심한 영업난에 시달리거나 폐업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속출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1억 원 이상 고액을 기부한 개인(아너 소사이어티)이 374명, 법인(나눔 명문기업)은 79개로 각각 17개 시도 중 서울 다음으로 많아 놀랍기만 하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말했다. “부(富)는 거름과 같아서 축적돼 있을 때는 악취를 풍기지만, 뿌려지면 땅을 기름지게 한다”고. 부는 갖고 있을 때가 아니라 나눌 때 가치가 커짐을 강조한 얘기다. 이같이 남을 위해 자기 재산을 내놓는 건 비록 좋은 일일지라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따라서 이 쉽지 않은 일을 하는, 가진 것을 베푸는 자는 진정한 부자다. 생활이 여유롭지 않아도 나눔을 실천하는 마음을 가진 시민이 많이 사는 도시. 진짜 부자가 많은 부산은 그야말로 ‘부자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수태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평소 주위에 “부자가 되는 길은 기부에 있다”고 말한다. 타인을 위해 가치 있게 돈을 쓰는 사람이 행복을 얻고 덕을 봐 부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는 의미에서다. 이달 말까지인 나눔 캠페인에서 모인 성금은 법적·제도적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 위기 가정 등을 지원하는 데 알뜰히 사용된다. 온정의 물결이 널리 확산해 매서운 경제 한파와 한겨울 강추위를 녹이기 바란다. 수많은 기부 천사에게 축복이 있기를!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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