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혼란을 부추기는 탄핵 보도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정치 상황이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령 선포의 충격 이후 대통령 탄핵소추, 체포영장 집행 등의 대형 사건이 숨가쁘게 전개되었고 언론은 관련 인사들의 동향, 여야 정당과 각 사회 집단의 대응 과정 등을 매일매일 추적해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도의 초점은 탄핵심판이 아니라 탄핵 자체의 정당성을 둘러싼 정파 간의 전면전 양상으로 변질해 버렸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언론 보도 자체가 정치 상황을 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파적 갈등을 부추겨 정치적 혼란과, 심지어 ‘정서적 내전’ 상태를 야기하는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언론은 헌법과 사법 체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어 사실상 혼란을 부추겼다. 이는 계엄과 탄핵 관련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 측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받아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윤 측’의 인용문 중에는 사실무근이나 진술 번복, 황당무계한 주장 등 기사에 직접 인용하기에 부적합한 내용이 많았는데, 대부분 추가 검증이나 맥락 제시 없이 그대로 보도되었다.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요원’,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었다는 주장은 이러한 발언의 압권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 자료에 의하면 윤 측 주장을 받아쓰는 보도 행태가 가장 두드러진 언론사는 YTN, 세계일보, 연합뉴스, 머니투데이, 한국경제 순이었다.
탄핵소추·체포, 정파 간 전면전 양상 변질
팩트 체크 없는 받아쓰기 언론도 책임
사회적 합의 일탈까지 양비론 포함 곤란
사실무근·황당무계 주장 인용 신중해야
물론 윤 대통령이나 측근 역시 주요 취재원이긴 하지만, 이는 정보 자체가 팩트에 부합하고 발언의 중요도 측면에서 뉴스 가치가 있을 때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마구잡이식 받아쓰기가 반복되면서 윤 측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은 극우 세력을 선동하고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방송 뉴스에서는 인용문을 제목으로 따는 형식의 보도가 주를 이루면서, 일방적 주장이 언론의 검증을 거친 사실처럼 오인되어 악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받아쓰기 보도가 넘쳐나게 된 것은 탄핵 보도에만 국한되는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아마 인용문의 팩트 체크(사실 확인)를 거의 하지 않는 언론의 오래된 관행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탄핵 관련 보도에서는 그간 누적된 직업적 악습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협할 수도 있는 심각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언론이 취재원의 발언에 대해 팩트 체크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정치인들에게 일종의 학습 효과를 가져왔다. 이제는 주요 정당의 지도자급 정치인들조차도 사실과 무관한 허위 주장이나 강성 발언을 심심찮게 남발하곤 한다. 여론의 주목과 지지층 결집 효과라는 이점은 큰 반면 설혹 문제가 되더라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들 사이의 극심한 정파적 대립은 여기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이처럼 극단적 발언들을 실어나르고 있을까? 아마 이들은 상반되는 정파들의 의견을 균형 있게 보도한다는 명분으로 현재의 보도 양상을 합리화하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찬반식의 ‘양비론’은 탄핵 관련 보도에서는 취해서는 안 되는 시각이다. 비상계엄 조치는 헌법의 기본 질서를 흔들어 놓는 테러 행위이고, 이 행위로 대통령을 탄핵할 것인지는 정파적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법률적 판단 문제이며, 판단의 다툼 역시 법적 절차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에는 탄핵심판 이슈가 사법 기구에 대한 신뢰 여부, 진보와 보수의 정치 성향,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 앞으로의 정치 지형 등의 이슈와 뒤섞여 있다. 이는 헌법 수호라는 본질적 문제를 의도적으로 정파 간 세력 다툼으로 희석시키려는 시도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헌법 수호가 핵심 이슈이지, 대통령 선거 국면이 아니다.
주류 언론이 정치적 양비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이슈에는 한계가 있다. 즉 해당 이슈는 미국의 언론학자 대니얼 핼린이 말한 ‘정당한 논쟁’ 영역에 속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언론 보도는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합의’ 영역을 전제로 삼는데, 기본적 도덕, 헌법이나 국가 기구, 의회 민주주의 제도의 정당성이 이에 속할 것이다.
헌법적 질서, 사법부, 국가 기구 자체의 합법적 집행을 거부하는 주장은 사회 운동가나 학자 간의 논쟁 대상으로서는 몰라도, 제도 정치권 내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기에 ‘일탈’ 영역에 속한다. 이는 존속살인이 찬반 이슈가 될 수 없고 국가 자체를 부인하는 테러리스트를 언론이 정당한 취재원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간 언론이 받아쓴 ‘윤 측’의 주장에는 ‘정당한 논쟁’ 영역과 ‘일탈’ 영역을 넘나든다고 볼 수밖에 없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최근에 격화하고 있는 사회 갈등에는 언론의 책임이 적지 않다. 만약 고의성이 없었다면 양비론은 편의를 위한 직업적 책임 회피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