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내리기 위해 오늘도 한 걸음 더 걷습니다”
전 ‘해성’ 대표 김성배 시인
두 번째 시집 <내일은 걷는다>
고통스러운 재활과정 노래
부산에서 35년 동안 활동해 오며 도서출판 해성 대표로 더 잘 알려진 김성배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내일은 걷는다>(모악)를 출간했다. 그가 4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이어서 암 수술까지 받으면서 안타깝게도 해성은 지난해 문을 닫았다. 시집을 들고 찾아오겠다는 문자를 받고는 그가 그동안 많이 좋아졌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김 시인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왼손과 왼발에 마비가 와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는 사실은 시를 보고 뒤늦게 알았다.
휠체어를 타야 하는 삶이 어떤지는 시 ‘휠체어’에 소개되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했다/발로 밀고 손으로 돌려서/살았다/이젠 값비싼 고급 소파보다/편안하다/이 좋고 편안한 삶을 벗어나고자/오늘도 걷는다/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시작한다.’ <내일은 걷는다>에 실린 시는 모두 39편으로 대부분 병마로 쓰러진 이후 재활과정을 기록한 ‘재활시’(?)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이 노래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까닭은 낙천적인 천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생활 재활 익히기’ 연작시는 세수하기, 머리 감기, 양말 신기, 걷기, 걷기 자극 치료까지 5편이 이어진다. 그 중 ‘걷기’ 편이다. ‘아픈 발로 한 걸음 내딛고 다음 지팡이를 짚는다 자연스럽게 허리 펴고 반복해서 걷는다 어느 정도 걸음이 많아지면 지팡이를 놓고 두 발로 걷는다 내일도 걷는다.’ 시인은 ‘양손 세수’와 ‘양손 양말 신기’를 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일상은 알고 보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병마와 싸우는 시인 덕분에 요산기념사업회나 최계락문학상은 물론이고 오줌시계, 두리발, 걸음마, 지팡이, 재활전동매트까지 당당하게 시로 새롭게 태어났다. 모두 이번 책에 수록된 시 제목들이다.
말도 아직 어눌한 시인이 온전하게 시를 쓸 정신이 있었을까. ‘책장에 글이 사라졌다’란 시를 읽고 저간의 사정이 짐작되었다. ‘모르는 단어를 찾으려고 사전을 꺼내다 책장이 무너졌다 책이 도미노 현상처럼 드러누웠다 아니 쓰러졌다 차곡차곡 줄지어 선 활자가 순식간에 넘어갔다 포개진 책 사이를 말들이 오고 간다 소설책과 산문집이 같이 그 뒤를 이어 시집이 넘어갔다 쓰러진 모양 그대로 서로 대화를 한다 책장은 지금 전쟁 중이다 책, 책 쓰러진다.’ 시인의 몸과 정신은 지금도 전쟁 중이다. 하지만 시인은 “시를 쓰면서 아픈 것을 잊었다. 시를 안 썼으면 재활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2009년에 낸 첫 시집이 <오늘이 달린다>인데, 두 번째 시집이 <내일은 걷는다>라는 점이 묘하게 느껴졌다. ‘오르는 것이 힘들지만 내려오는 것 또한 힘들다 잘 올라가는 것 잘 내려오는 것 둘 다 중요하다’라는 대목이 답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빨리 달리기보다 계속해서 걸을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 시인은 “삶을 살아가면서 너무 지치거나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 읽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