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45년 만에 또 쿠데타 가담, 육군을 어이할꼬
육군·육사 중심주의 해체 통해 군 권력 독점 깨야
군 내 육군 비중 절대적, 불행의 시작
장성도 육사가 압도, 폐쇄주의 낳아
12·3 사태 발생의 근원적 환경 제공
현 군 통수권, ‘친위 쿠데타’에 허점
국방장관 직할 부대도 대폭 줄여야
육사 교육의 대대적 개편도 불가피
민주사회 보호·헌법 가치 수호 목표
국군 존재 이유·지향점 분명히 해야
그래야 국민의 군대로 탈바꿈 가능
설 연휴 때 잠시 멈췄다가 4일 재개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 이날 변론에는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이에 적극 가담한 육군의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출석해 비상계엄 선포 당일 윤 대통령의 지시 내용과 그 이행 여부 등을 증언했다. 6일에는 곽종근 육군 전 특수전사령관, 김현태 특전사 707특수임무단장 등이 또 증인으로 나선다. 또 이들은 헌재 외에도 대부분 군사법원에 기소돼 내란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일부 군 수뇌부의 빈약한 헌법 수호 정신이 빚은 군 위신 추락의 적나라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두 달 전 발생한 12·3 비상계엄은 우리나라의 통치 체계 중 어느 곳도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내·외상을 입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국군, 특히 육군이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헌정 질서를 뒤엎으려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부화뇌동한 육군은 이로 인해 45년 만에 다시 ‘쿠데타 세력의 온상’이라는 국민적 비난 속에 최대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고 나라가 다시 정상 궤도를 되찾게 되면 국군 통수 체계의 전면 개편, 특히 육군과 육사의 개혁은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군 안팎에서 다양한 제안이 나오고 있다. 육군과 육사가 이렇게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배경과 향후 개혁의 방향을 살펴본다.
■ ‘친위 쿠데타’에 취약한 군 통수 체계
우리 육군이 45년 만에 다시 ‘정권의 부역자’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게 된 구조적 요인은 먼저 취약한 군 통수 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군 통수권은 헌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을 정점으로 국방부 장관을 거쳐 군령과 군정 체계로 나눠진다. 군 작전을 지휘·통제하는 명령권, 즉 군령권은 합동참모의장을 통해 이뤄지고, 군대의 인사·군수·교육 등에 관한 지휘·통제 명령권, 즉 군정권은 각 군 참모총장을 통해 시행된다. 현행 체계에서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외에 누구도 군령과 군정의 두 권한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야전의 어떤 군 지휘관이라도 불법적으로 병력을 동원하거나 단독 군사 작전을 시도할 수 있는 두 권한은 근원적으로 차단된 만큼 예전과 같은 야전 군 지휘관에 의한 쿠데타는 현 체계에선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허점이 있다. 바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스스로 쿠데타와 같은 행위를 획책한다면 이를 방지할 명시적인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아래만 내려다보았지, 위를 생각하지 못한 점이 이번 12·3 비상계엄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 ‘비상계엄 행동대’ 국방부 직할 부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외에 군령권과 군정권을 쥐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국방부 장관에게는 또 직접 통제권을 가진 직할 부대가 있다. 합참의장이나 각 군 참모총장이 관여하지 못하는 부대인데, 주로 부대 이름 앞에 ‘국군’ 또는 ‘국방’이 붙어있다. 이번 사태에 행동대로 가담한 국군방첩사령부, 국군정보사령부가 그런 부대다.
수도경비사령부와 특수전사령부의 경우 군령은 합참의장, 군정은 육군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외곽 경비나 경호, 각종 시범 등을 맡는 별동대처럼 운영되면서 사실상 군 통수권자 수호를 자신의 부대 정체성으로 여길 정도로 일반 부대와는 성격이 다르다. 군 통수권자의 수호와 의중에 매우 민감한 만큼 부대의 지휘관이 되려면 국방부 장관의 신뢰가 절대적이다. 비상계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밀접한 육사의 직속 후배들이 국방부 직할 부대의 지휘관을 모두 꿰차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현재 국방부 장관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는 부대는 30여 곳 정도라고 한다. 정상적인 군령·군정 체계 밖의 부대인 만큼 예전 문재인 정권도 군 개혁 차원에서 통폐합을 시도했으나 조직 논리에 밀려 유야무야됐다. 윤석열 정부 역시 정권 출범 초엔 통폐합을 표방했으나 이후 현실에선 직할 부대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결국 정상적인 군 지휘 체계에 벗어난 직할 부대의 방치가 이들의 쿠데타 가담에 좋은 토양이 된 셈이다.
■ 육군·육사, 환골탈태의 개혁 불가피
육군 수뇌부의 반헌법적인 행위로 육군은 세 번째로 ‘정권의 부역자’라는 오명 속에 탄핵심판 결정과 관계없이 최우선의 개혁 대상으로 떠올랐다. 비상계엄 사태로 구속된 군 장성들은 모두 육군, 세부적으로는 육사 출신 일색이다. 육군 외에 해군, 공군은 물론이고 육군 내에서도 비육사 출신은 이번 사태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군 수뇌부 인사에서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하는 육군의 비중 축소와 함께 육사 교육 체계의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함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2023년 후반기 장군 인사를 보면 전체 준장(별 1개) 진급자 중 육사 출신은 약 70%를 차지했다. 이것만 해도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육사의 비중은 갈수록 더 늘어난다. 소장(별 2개) 진급자 중 육사 출신은 85.8%, 중장(별 3개)은 85.7%였다. 우리나라 군 체계는 사실상 육사 출신들의 손에 의해 장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보듯 육사 출신들은 40여 년 동안 성숙해진 민주화 사회에 발맞추기는커녕 완전히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폐쇄적인 육사, 군대 내 그들만의 리그가 쌓이고 쌓여 발생한 폐해다. 육군의 핵심인 육사 개혁의 목소리가 거셀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군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는 군의 존재 이유와 지향점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민주사회의 보호와 헌법 가치 수호다. 이를 분명하게 제시한 뒤 군 교육 과정 초기부터 철저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특히 육사의 경우 이를 바탕으로 국가와 다른 사회 구성원과의 소통·공감하는 능력을 중점적으로 배양해야 하는 교육 과정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는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 함양과 인성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현역 군인이 대부분인 현재의 육사 교수진으로는 어려운 일인 만큼 전문 군사교육을 제외한 다른 과목은 대대적으로 민간에 개방할 필요가 있다. 또 정보전과 통합전 시대에 따라 각 군 사관학교를 통폐합한 통합 군사대학의 설치를 비롯해 현재 유일하게 서울에 남아 있는 육사의 지방 이전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가 됐다.
육사 출신의 엘리트 장교들이 또다시 국기문란 행위에 적극 가담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는 현행 육사 체계의 개혁을 도모할 기회를 맞았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육군이 환골탈태한다면 국민의 가슴 속 응어리가 조금은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