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상식적이지 않은 윤 대통령의 '계엄 방어법'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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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아무 일도 없었다"는 윤 대통령 헌재 발언
그 밤에 벌어진 상황과 동떨어진 비상식적 해명
'복귀' 기대감에 전면 부인, 9년 전 결과 새겨야
尹 거리 두기 실패한 여당 보수 정체성 찾아야

12·3 비상계엄 실패 직후 대국민담화에서 “모든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이후 수사에 일체 불응하고, 위헌·위법적 지시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계엄 포고령과 같이 증거가 명확한 부분은 ‘집행 가능성이 없는 상징적’인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거나 은근슬쩍 책임을 밑으로 떠넘겼고, 녹취가 없는 ‘지시’ 부분은 수명자의 신뢰성을 공격하면서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 ‘싹 다 잡아들여라’는 지시 내용을 밝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폭로 동기를 ‘인사 불이익’으로 암시하면서 “(계엄 당일)통화를 해보니 벌써 반주를 한 느낌이 들었다”고 깨알 같은 항변을 남긴 게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공수처에 체포될 당시 관저를 찾은 여당 의원들에게 “나라가 위기인데 임기 2년 반 더 해서 무엇하겠나”면서 ‘정권 재창출’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 때만 해도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 등에서 자신은 물러나더라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의 폭거로 인한 헌정 질서의 위기는 막아야 한다고, 좀 크게 대응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법정에 선 윤 대통령의 모습은 법의 허점을 찾아 요리조리 피해가려는 일반 형사범의 태도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사로서 당당한 기백에 매료됐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왠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든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헌재의 5차 탄핵심판 변론에서 “상식에 근거해 본다면 이 사안의 실체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윤 대통령 측이 들고 나온 ‘계몽령’이 궤변인지, 아닌지 몇 가지 쟁점을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저지할 생각도,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지시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 계엄군은 도대체 왜 그 밤에 유리창까지 깨면서 본회의장에 진입하려고 기를 썼으며, 절대 복종 관계인 군 지휘관들은 왜 있지도 않은 군통수권자의 지시를 ‘문을 부숴서라도’ 등 구체적인 표현까지 동원해 날조했을까? 계엄 선포 직후 그 급박한 시간에 이전까지 단 한 번도 통화한 적 없는 국정원 1차장에게 전화해 ‘간첩 잡는 데 협조하라’는 일반적 지시를 내렸다는 설명은 상식선에서 이해가 되나? 윤 대통령 자신도 논리가 좀 궁색하다 여겼던지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렇다 저렇다 말은 많지만 결국 지시했다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실체가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일텐데, 범죄 미수도 범죄라는 것 또한 당연한 상식이다.

계엄 실패 직후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거취를 당에 일임한다”던 윤 대통령이 한 달 만에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이는 건 예상치 못했던 지지율 급상승으로 ‘복귀’ 가능성이 열렸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9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살펴봤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 자유 침해, 국민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등 4개의 혐의 중 탄핵 사유로 인정된 것은 최서원(최순실) 씨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단 한 가지였다. 여기에 수사 불응, 부정확한 해명 등으로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는 판단이 더해졌다. 이에 비춰보면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상식적 판단도 명료해진다. ‘법잘알’인 윤 대통령이라고 이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전면 부인 전략은 탄핵 인용 이후에도 불복하는 지지층을 모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속내도 깔렸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기대가 미몽으로 끝날지 반전이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발등의 불은 여당인 국민의힘에 떨어졌다. 계엄 초기 대두된 ‘질서 있는 퇴진론’은 수습의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였을 뿐,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이 더 이상 어렵다는 건 친윤(친윤석열)계도 공감하는 바였다. 그러나 지지층 결집에 고무된 당 지도부는 이젠 ‘옥중 발언’까지 챙기며 윤 대통령을 당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왔다. 어렵게 단절한 ‘아스팔트 보수’ 세력과 더 깊게 손을 잡았고, 변방에 머물렀던 부정선거 음모론에 점점 편승하려 한다. 사법부 테러 행위를 양비론으로 감싸면서 헌재 재판관을 향한 사상 검증이라는 낡은 전가의 보도를 다시 끄집어냈다. 2020년 ‘총선 폭망’ 이후 30대 이준석 대표를 앞세워 건넜던 ‘탄핵의 강’에서 다시 되돌아와 어렵게 축적했던 전국정당화의 자산들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고 있다. 법 체계 내에서 점진적 변화를 모색하는 보수 정당이 폭력을 옹호하고, 법치주의의 기반을 흔드는 자기 부정 행태를 보이지만, 내부 자정 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집토끼’만 챙기면 중도층은 자동적으로 끌려올 것이라는 지금 여권 내부의 팽배한 믿음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중도층의 마음에서 크게 이탈해버린 국민의힘의 앞길에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상하는 시각도 지극히 상식적이지 않을까.

전창훈 서울정치부장 jch@busan.com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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