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거래의 기술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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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무대에서 자신을 비합리적으로 인식되게 하는 전략을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이라고 한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모스크바에 핵을 투하하겠다”라고 공언하자 서방세계는 그를 “미쳤다”고 비난했다. 닉슨은 스스로를 미친놈처럼 인식시켜 소련의 전쟁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속내였다. 닉슨 스스로 이름을 붙인 ‘미치광이 전략’은 언제 무슨 일을 벌일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난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전략의 계승자를 자임하고 있는 모양새다. 취임 직후부터 상대방이 수용하기 어려운 것을 ‘예측 불가, 몰상식, 막말, 말 바꾸기’ 등 방식으로 겁박한 뒤, 이면에서 실리를 챙기는 전술을 쓰고 있다. 국가 간 약속은 나 몰라라 하기 일쑤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시행 6시간 전에 유예한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인 가자지구를 점령하겠다고 밝혔다. 주민 220여만 명을 인근 이슬람 국가로 강제 이주시키고, 필요하면 현지에 미군을 파견하겠다는 구상까지 공개했다.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조차 경악할 정도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에 재선된 트럼프를 거친 입과 행동만으로 쉽게 평가할 수는 없다. 미치광이처럼 보이지만, 그 행보 뒤에는 고도의 원칙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 〈불구가 된 미국〉 〈어떻게 결정하는가?〉 등에서 “싸움에서 패를 드러내는 것은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 아주 멍청한 실수다”라고 설명한다. 트럼프는 협상 성공 방법으로 “압박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제압하려면 예상하지 못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상대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동요를 일으킨다’ ‘사건을 일으켜 상대를 시험한다’ ‘상대방의 초조감을 이용해 거래를 성립시킨다’라고 거래 성공 기술을 꼽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인에게 읽기를 권하는 첫 번째 책이 〈손자병법〉이라고 한다. 〈손자병법〉 모공편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구절이 있다.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우리로서는 두 번째로 맞는 트럼프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지피지기’가 급선무이다. 급하다고 무작정 협상장에 뛰어들기보다,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만의 지렛대를 만들어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거래의 기술’이다. 기운 차리자. 대한민국!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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