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가해자 혀 깨물어 범죄자 된 최말자 씨 재심 결정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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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법, 원심 결정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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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78) 씨의 재심이 시작된다.

부산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재욱)는 지난 10일 “중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 씨의 원심 결정을 취소한다”며 “재심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경찰 수사 단계에선 성폭력 범죄 피해자로서 정당방위 주장을 인정받았음에도 돌연 검찰 수사 단계에선 구속돼 수사받은 다음 중상해죄로 기소됐다”며 “이런 일련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 더해 피고인 스스로 밝힌 재심 청구 의도나 동기 등에서 부자연스럽고 비합리적이라거나 재심 제도를 악용한다고 볼만한 사정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재심 이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증거가 엄연함에도 이를 도외시한 채 피고인의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것은 개인에게 ‘수사기관이 수사하여 공소를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공소유지를 하여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와 동일한 수준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면서 재심 사유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3일 내 항고하지 않으면 재심 개시 결정이 확정된다. 검찰은 지난달 심문기일에서 재심 개시 의견을 밝혀 재심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검찰은 “대법원은 재심 청구인 진술 그 자체가 재심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증거로서 신빙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하고, 재심 청구인의 진술에 부합하는 당시 신문 기사 등을 토대로 본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며 “이러한 대법원 결정의 취지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1964년 5월 6일 오후 8시 경남 김해의 한 마을에서 당시 18세였던 최 씨는 밤길을 걷던 중 노 모(당시 21세) 씨와 마주쳤고, 노 씨는 최 씨를 덮치며 성폭행을 시도했다. 최 씨는 노 씨의 혀를 깨물며 저항했다.

노 씨의 혀가 1.5cm 정도 잘리자, 최 씨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중상해 가해자로 몰렸다. 검찰은 최 씨를 구속했지만, 정작 노 씨는 강간 미수가 아닌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됐다.

최 씨는 1965년 1심 재판에서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 씨에겐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구속수사를 받은 최 씨만 6개월 동안 구치소 생활을 한 셈이다.

최 씨는 사건 발생 56년 만인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으나 부산지법과 부산고등법원은 “반세기 전 사건을 성차별 인식과 가치관이 변화된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3년 넘는 심리 끝에 최 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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