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끝내고 정상화 집중해야”
박지훈 경제부 기자
지난달 최 회장 승리로 일단락
부울경 지역의 지지 뒷받침 돼
고려아연 손길에 MBK 화답하길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지난달 임시 주주총회에서 현 경영진인 최윤범 회장 측의 승리로 1막을 마쳤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9월부터 동업자이자 최대주주인 영풍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 잡고 주식 공개매수 등 경영권 획득에 나서며 진통을 겪었다. 올해도 지루한 법정 공방 등 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 분쟁은 3세로 넘어간 재벌 대기업의 취약한 경영권, 사모펀드의 위협,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 등 한 사건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여기에 미·중 패권 경쟁 속 세계 1위 비철금속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문제까지 경제학 교과서에서 다룰 만한 사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최대주주가 가장 큰 권한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거스르고 최윤범 회장이 주총에서 승리하기 위해 해외 손자회사를 동원해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고 영풍의 보유 지분을 ‘상호주 제한’으로 묶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썼다.
그러나 ‘묘수이자 꼼수’를 동원했음에도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외 기관투자자 95% 이상이 최 회장에게 지지를 보냈다.
수년째 적자를 기록한 영풍의 경영 능력과 낙동강 상류에 폐수를 흘려보내는 도덕적 해이는 고려아연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간산업을 단기 이익에 집중하는 사모펀드에 맡길 수 없다는 공감대도 크게 작용했다.
이같은 결과가 과연 최윤범 회장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 부울경 지역이 지지하지 않았다면 결코 기관투자자를 움직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울경은 분쟁 초기부터 ‘고려아연 주식갖기 운동’ 등 경영권 방어에 힘을 모았다. 주식의 열세를 명분의 우위로 뒤집은 발판을 마련해준 셈이다.
고려아연의 주력사업지인 울산 온산제련소는 3000여 명의 노동자와 100여 개의 협력업체가 일하고 있다. 노동자 상당수는 인근 부산과 경남에 거주하거나 생활권을 공유한다. 협력업체 대다수도 부산·경남에 있다. 기업의 명운이 사업장 소재지인 울산 뿐만 아니라 부산과 경남까지 파장을 미치는 구조다.
이제 분쟁을 끝내고 경영 정상화와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해 고려아연의 순이익은 4분기 경영권 분쟁 과정에 차입금 증가 탓에 59.6% 감소했다.
고려아연은 주총 직후 MBK의 이사회 진입 등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다툼이 길어질수록 ‘승자의 저주’ 역시 커질 것이다. 이제 MBK가 대답할 차례다.
박지훈 기자 lionki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