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양손이 가벼울수록 여행은 즐거워진다…부산역 짐 보관소에서 일해봤다 [기자니아]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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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도시 부산 ‘관문’ 경부선 부산역
무거운 캐리어 등 옮기는 힘·시간 아껴
여행 돕는 짐 보관·배송 서비스 인기

해운대 등 오가며 짐 수거 시간 빠듯
친절함이 긍정적 도시 이미지 결정
진상 손님 등 돌발 상황 대처 중요

갓 도착한 여행객 설렘 함께 느끼고
부산 곳곳 누비며 즐기는 풍경 매력
짐 찾은 고객, 웃으며 떠날 때 큰 보람

[편집자주] 한국전쟁 피란민들을 품으며 뻗은 산복도로 위로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환적 규모 세계 2위’ 최고 수준의 항만을 보유한 글로벌 해양도시, 부산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다채로운 모습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솟은 산과 드넓은 바다, 초고층 빌딩과 산복마을이 공존하는 풍경만큼이나 독특하고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오늘도 부산을 터전으로 힘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산일보는 부산 사람들의 일과 직업을 ‘기자니아’라는 콘텐츠에 담고 있습니다. ‘기자니아’는 ‘키자니아’(어린이 직업 체험 테마파크)와 ‘기자’의 합성어로, 기자들이 직접 부산의 다양한 직업을 체험한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직업을 통해 부산의 매력과 역사를 보여주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영상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됩니다. 유튜브에 ‘기자니아’를 검색해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활기찬 도시가 어우러진 부산은 자타공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입니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2320만 명이 이용한 부산역은 부산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부산역에는 부산을 찾은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캐리어 등 크고 무거운 여행객들의 짐을 보관하거나 숙소까지 배송하는 서비스가 대표적입니다. 2018년 부산의 한 업체가 시작한 이 서비스는 짐을 옮기는 데 드는 힘과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여행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부산역에서는 하루 평균 서비스 이용 건수가 보관 500건, 배송 300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부산역은 물론 전국 주요 기차역과 공항 등으로 서비스가 확대됐습니다.

지난달 24일 연휴를 앞둔 부산역에서는 큰 여행용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정 PD luce@ 지난달 24일 연휴를 앞둔 부산역에서는 큰 여행용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정 PD luce@

연휴 앞두고 붐비는 부산역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설 연휴 시작을 하루 앞둔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은 평소보다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일찍 귀성길에 오른 듯 양손 가득 선물 꾸러미를 든 가족 단위 방문객도 눈에 띄었고, 막 부산에 도착한 듯 큼지막한 캐리어를 끌고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앳된 얼굴의 여행객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역사 1층에 자리한 짐 보관소가 이날 기자의 일터입니다. 검은색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인턴’ 직함이 붙은 명찰을 패용하니 신입 사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업무에 대해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곧바로 실전에 투입됐습니다. 짐을 맡기는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 오늘의 첫 업무입니다. 고객의 이름, 휴대전화 번호, 짐 찾는 시간 등을 카드에 적은 뒤 짐을 적재함에 차곡차곡 정리해야 합니다.

열차가 부산역에 도착하는 시간마다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캐리어와 큰 가방 등을 맡기기 위해 짐 보관소를 찾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평소 취재를 위해 낯선 이들에게 말을 거는 일은 수없이 경험했지만, 처음 만나는 손님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일은 긴장되고 어색했습니다. 광안리, 해운대 등에 위치한 숙소로 짐을 부치기 위해 찾은 손님들도 많았습니다. 밝은 표정에서 여행의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여행객들을 주로 만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어색함은 풀리고, 표정도 한결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기자가 부산역 짐 보관소를 찾은 손님을 응대하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기자가 부산역 짐 보관소를 찾은 손님을 응대하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여행객 밝은 에너지가 일의 매력

오전 11시 30분, 다음 업무를 위해 커다란 트럭에 탑승했습니다. 해운대해수욕장 인근 호텔 4곳을 돌며 부산역으로 보내는 짐을 수거해오는 작업입니다. 운전석에 앉은 5년 차 박지훈 대리는 이날 하루 기자에게 업무를 가르치는 ‘사수님’입니다. 부산역을 출발한 차량이 광안대교를 건너자, 창밖으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박 대리는 “도시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여행객들의 밝은 에너지도 느낄 수 있는 게 이 직업의 매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처음 방문한 호텔에서 수거한 캐리어는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끌고 올 때부터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함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짐칸에 실으려고 두 손으로 들었지만 꿈쩍하지도 않았습니다. 기자와 함께 캐리어를 든 박 대리는 “이 정도 무게는 ‘인간적인’ 축에 속한다”며 “가벼운 짐이라면 여행객들도 굳이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거한 짐은 적재하기 전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고객에게 수거 상황과 짐 상태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기자가 해운대구의 한 호텔에서 수거한 캐리어를 트럭에 실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기자가 해운대구의 한 호텔에서 수거한 캐리어를 트럭에 실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떠날 때 표정이 더 밝기를

오후 3시, 부산역으로 돌아온 기자에게 이날의 마지막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적재함에서 짐을 찾아 전하는 일입니다. 보관소는 오전에 맡긴 짐을 찾는 손님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부산 여행을 마친 뒤 다시 기차를 타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 여행의 즐거움과 아쉬움이 함께 남아있는 듯했습니다. 박 대리는 “많은 손님을 응대하다 보면 요금이 비싸다는 식으로 시비를 걸거나, 반말로 길을 묻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이들도 부산을 찾은 여행객들이기 때문에 친절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짐을 맡길 때보다 찾을 때 표정이 밝은 고객을 만나면 뿌듯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오후 4시, 업무를 마친 뒤 찾은 부산역 맞이방에는 오전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어디론가 떠나며, 그리고 설렘을 품고 막 부산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로 부산역은 오늘도 북적입니다. 앞으로 부산역에 갈 때면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행객들의 표정에 눈길이 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표정이 부산역에 처음 내렸을 때보다 떠날 때 더 밝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지훈(왼쪽) 대리와 기자가 고객의 짐을 찾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박지훈(왼쪽) 대리와 기자가 고객의 짐을 찾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글=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동영상=이정·김보경 PD luce@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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