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씹어 먹기 ‘오도독’]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해봐”
왓챠 드라마 ‘귀에 맞으신다면’
미식가 회사원의 방송 도전기
일상을 빛내는 ‘취향’의 쓸모
일본의 한 락교 회사에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 타카무라 미소노. 그녀의 머릿속에는 늘 음식 생각뿐이다. 업무는 버겁지만, 퇴근 후 뭘 먹을지 고민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미소노의 ‘맛있는 고민’은 회의 중에도 멈추지 않는다. 이를 본 상사는 한 마디 일침을 날리지만, 그녀는 잠깐 기죽은 척할 뿐, 속으로는 여전히 메뉴를 고민하며 프로 직장인(?)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말하기는 서툴지만 음식 이야기만큼은 청산유수. 그녀는 동료들의 추천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된다.
미소노는 첫 방송에서 최애 규동 가게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입 밖에 오랫동안 꺼내지 않으면 좋아하는 마음이 죽어 버린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걸 쭉 좋아하고 싶어 방송을 시작했으니 귀에 맞으신다면 또 들어주세요.”
왓챠가 제공 중인 일본 드라마 ‘귀에 맞으신다면’은 음식을 사랑하는 미소노의 우당탕탕 1인 방송 성장기를 그린 12부작 드라마다.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2022)의 마츠모토 소우시 감독과 주연 이토 마리카가 다시 의기투합했다.
미소노는 팟캐스트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간다. 처음엔 마이크 앞에서 긴장하지만, 점차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릴 적 엄마가 사준 카레덮밥,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앞두고 먹었던 함박스테이크 등 음식에 담긴 추억과 맛을 청취자와 나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청취자의 악플에 상처받고, 한마디씩 거드는 지인들의 반응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현실에서 만난 팬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여러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그녀는 팟캐스트를 시작하며 했던 말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고 싶었을 뿐.” 이내 마음을 다잡고 마이크 앞에 다시 앉는다.
드라마는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그리고 그 마음을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응원하는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빌런’ 없이도 드라마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날 미소노는 회사의 지시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제품을 홍보하게 된다. 잔뜩 긴장한 모습도 잠시, 막상 방송이 시작되자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막힘없이 풀어낸다. 팟캐스트를 하며 쌓은 노하우와 맛있는 음식을 향한 열정이 비빔밥처럼 맛있게 버무려진 것. 회의 시간에 미소노를 지적하던 선배는 그런 그녀를 보며 화해의 의미로 칭찬과 웃음을 건넨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음식과 팟캐스트 방송이 결합한 독특한 콘셉트,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에 있다. 드라마는 이 강점을 최대한 살려 소소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조금 더 즐거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시청자들에게도 자신의 ‘최애’를 떠올리게 만든다. 작품 속에는 실제 일본에서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들이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보이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소노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입에 침이 고인다.
지금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 보자. 음악, 영화, 아이돌, 책… 무엇이든 괜찮다. 오늘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줘 보는 건 어떨까. 상대방이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뭐 어떤가. 좋아하는 걸 떠올리는 순간, 당신의 하루는 이미 더 맛있어졌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