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자 돕는데 정부·지자체 뭣하나
대책위, 대응 방안 담은 매뉴얼 마련
구제책도 필요하지만 방지책이 최선
전세사기는 사회악으로 그 폐해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피해자 중 상당수가 사회 초년생인 청년들이거나 신혼부부로 전 재산을 빼앗기며 심각한 주거 불안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전세사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 부재를 말해준다.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이 오죽했으면 피해자들은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는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을 때 대응 방안을 담은 ‘전세사기 피해자대책위 매뉴얼’을 공개했다.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전세사기는 여전히 멈춤이 없다. 최근에는 부산의 한 부동산 법인과 전세 계약을 맺은 세입자들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건이 일어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피해자들이 밝힌 피해액만 해도 100억 원 이상이라고 한다. 전국대책위가 이번에 공개한 매뉴얼은 피해자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자료다. 매뉴얼에는 피해자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담겨 있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들의 연대와 조직적 대응의 중요함도 강조하고 있다. 형사적 단계에서 공동 대응의 중요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회 경험이 부족한 청년 개인이나 신혼부부가 악덕업자의 탐욕을 넘기는 어려운 일이다.
전세사기를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단순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제도적 결함에서 비롯된 사회적 재난이다. 현행법과 제도의 허점이 전세사기의 배경이 된 경우가 허다하다. 전세사기피해지원특별법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는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 75%(179만 원) 이하, 금융재산이 839만 원 이하인 경우에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 범위 또한 생계·의료·주거·교육 등 필수적인 분야에 한정돼 이사비용이나 노후주택 시설보수비 등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피해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직접 해결책 찾기에 나선 것은 분명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하지만 전세사기는 제도적 결함에서 발생한 문제인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재정적인 지원과 함께 제도적 결함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특별법 지원 대상 확대, 세입자 우선 변제 보증금 상한 규정 조정, 전세 보증보험 가입 100% 의무화와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는 일부 마련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피해 발생 후의 일이다. 사후 구제도 필요하지만 이런 피해를 안 입으려면 방지가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