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처뿐인 의정갈등 1년, 의료 정상화 논의 서둘러야
승자 없는 정부-의료계 대립, 끝내야
시급한 내년 의대 정원 합의 모색을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대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며 촉발된 의정갈등이 1년을 넘기고도 답보 상태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 중 올해 복귀 의사를 밝힌 비율은 2.2%에 불과한 반면, 56%가 일반의 등으로 떠났다. 올해 신규 의사 배출은 269명에 그쳐 지난해의 8.8%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집단 휴학했던 의대생들은 올 신학기에도 복학하지 않을 조짐을 보이며 사태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역·공공·필수 의료 체계를 개선하자는 애초의 문제의식은 온데간데없이 ‘2000명’ 숫자만 좇은 결과는 참담하다. 세계적 경쟁력의 K의료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환자와 의사, 병원, 의대생과 대학 모두가 피해자로 전락했다.
의정갈등의 후과는 심각하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한 김윤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의 초과 사망률 분석은 충격적이다. 지난해 의료 공백이 있었던 6개월간 평소 대비 3136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응급 체계 붕괴와 진료 차질의 결과는 결국 국민의 희생이었다. 이마저도 정부가 거액의 예산을 투입했기 때문에 최악 상황을 모면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지난해 정부는 예비비와 건강보험 재정 등 3조 3000억 원을 투입했다. 그런데도 ‘응급실 뺑뺑이’는 예사고, 환자피해센터에 신고가 쌓이고 있다. 올해 의정갈등이 더 악화된 끝에 예산 지원으로도 막지 못할 의료 재앙을 겪게 될까 두렵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의료계는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뒤늦었지만 사과하고 대화를 호소한 건 다행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은 ‘증원 제로(0)’ 입장을 고수한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 포고령에서 ‘전공의 처단’이 명시된 뒤 전공의들이 더욱 강경해진 영향도 있다. 지난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료인력 수급 추계 기구 법제화 공청회’도 기구의 권한과 구성을 놓고 이견만 확인하고 성과 없이 끝났다. 여야의정 협의체는 출범 20일 만에 한 차례 회의를 한 뒤 재개 여부가 안갯속이다. 내년 의대 정원의 4월 확정 시한이 다가오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내년 의대 정원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정부안대로 강행되면 의정갈등은 2라운드로 접어들고 의료 파행이 심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상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재정이 또 투입되겠지만 환자들의 불편과 고통은 여전할 공산이 농후하다. 지역·공공·필수 의료 체계 구축도 언감생심이다. 국가적 손실이 너무 커진다. 상처만 남은 의정갈등에 국민은 너무 고통스럽다. 이 갈등에 승자는 없다.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그 첫걸음은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 사이에 논의를 재개하는 것이다. 우선 내년 의대 정원 이견을 해소해야 한다. 지금은 시급한 사안부터 해결책을 도출하면서 의료 정상화의 동력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