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개헌이라는 기회
송지연 기획취재부장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한 임기 말
협력보다 권력 투쟁 고착화 산물
지난 비상계엄은 정치 갈등의 정점
권력 구도 개편 개헌 시대적 과제
실질적 지방분권 토대 포함돼야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체제는 6공화국이다. 공화국의 구분은 헌법 개정을 통해 전면적으로 정치 구조가 바뀐 것을 기준으로 한다. 1987년 개헌을 통해 군부독재를 끝내고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시행한 이후 약 37년 동안 6공화국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개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10년 가까이 됐다. 급변한 시대적 가치를 담은 헌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직접적인 이유는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한 임기 말과 정치적 혼란이었다. 6공화국 출범 후 총 8명의 대통령 중 5명이 본인이나 자녀가 구속됐으며, 1명은 검찰 조사를 받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대통령들의 불행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졌다. 임기 중반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지형이 되고, 권력 변환기에 대통령과 주변은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되는 일이 반복됐다. 협력보다는 권력을 향한 투쟁의 구도가 굳어졌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그 정점에 나타난 현상으로도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이후 개헌 논의는 가속화 할 것이다. 비상계엄 직후 개헌을 먼저 언급 한 여당의 진정성부터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헌정 유린의 내란 공범 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개헌 이슈를 내놓았다는 의구심이 거둬질지 지켜볼 일이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에 선 더불어민주당도 개헌안을 내놓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 4임 중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당시 개헌의 구체적 시기가 언급되지 않아 신뢰를 얻기 힘들었다. 이번에는 다를까?
개헌을 추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문재인 정부 때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4년 연임 대통령제를 내건 개헌안을 발의했으나, 한 달 만에 무산을 선언해야 했다. 여야 합의 불발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례로 볼 때 누구나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하지만, 당리당략에 얽혀 현실적으로 통과가 어렵다는 비관론이 제기된다.
정치적 셈법 뿐만 아니라 개헌 절차의 난관도 만만치 않다. 개헌을 위해서는 우선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고, 국회 의결 후 30일 안에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 국민투표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권자 절반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자 과반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처럼 국론이 극한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개헌이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비상계엄선포와 이후 극심한 갈등을 거치면서 개헌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전쟁 때나 발동할 수 있는 계엄을 국회와 언론, 그리고 뜬금없이 전공의를 탄압하는 데 사용하려 한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국민들이 비상식적인 대통령을 선출했을 때, 대통령에게 계엄 권한을 주는 것이 맞는지 질문을 던진다.
한편으론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사법 처벌을 받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지도 의문이다. 거대 야당이 탄핵과 특검 남발로 국정 발목 잡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대한민국은 좌초하고 말 것이다. 기존의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할 권력 구조 개편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성장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 기회에 국가 개조의 틀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성장이 멈추고, 결국 국가 소멸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개헌 논의에서 빠져서는 안 될 대목은 중앙 정부에 집중된 권력의 분산, 즉 지방 분권 개헌이다.
수도권이라는 하나의 엔진으로 대한민국의 성장을 더 이상 견인할 순 없다. 수도권과 같은 성장 거점을 지역에도 만들어야 한다. 우는 아이에게 떡 주듯이 중앙정부가 지방에 예산을 나눠주는 형태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
헌법에 국가균형발전 규정을 강화해 지방정부가 독자적으로 발전 전략을 세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실질적인 입법·행정·재정권을 보장해야 한다.
부울경은 수 년동안 통합을 위한 노력을 진지하게 해 왔다. 현실적으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수도권에 버금가는 성장 동력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지역이다. 그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법 정비가 필요하다.
개헌 논의가 단순히 중앙 정치권의 권력 구조 개편에 머문다면 반쪽짜리 개헌이 될 것이다. 큰 사회적 혼란 속에서 개헌의 공감대가 고조되고 있는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야 비상계엄이라는 위기가 국가 성장의 새 판을 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