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범죄 시달린 독일, 3년 만에 우파로 정권 교체
기독민주·사회 연합 총선 승리
‘난민 재이주’ 극우당과도 협력
난민 범죄 따른 민심 이반 분석
집권 사회민주당 원내 3당 몰락
23일(현지 시간)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 총선거에서 우파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승리해 3년 만에 정권교체를 예고했다. 초강경 난민정책을 내세운 이들 우파 정당들이 약진하면서 최근 잇따른 난민 흉악범죄와 이로 인한 반이민 정서가 승패를 갈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의 최종 개표 결과에 따르면 299개 선거구 정당투표에서 기독민주당은 22.6%, 기독사회당은 6.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이 득표율 20.8%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올라프 숄츠 현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은 대패를 맛봤다. 사회민주당은 16.4%를 득표해 제3당으로 전락했다. 사회민주당의 현 연립정부 파트너 녹색당은 11.6%, 막판 돌풍을 일으킨 좌파당은 8.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사회민주당의 합계 의석수가 재적 절반(315석)을 넘기면서 일단 두 정당의 좌우 합작 대연정이 가능해졌다. 정확한 의석 배분은 24일 확정될 전망이다.
연정 구성에 성공할 경우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가 총리를 맡을 전망이다. 메르츠 대표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이제 내 앞에 놓인 책임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또 “세상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부활절인 4월 20일까지 연정 협상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은 지난해 11월 일명 ‘신호등’ 연정 붕괴로 시작한 이번 총선 기간 내내 30% 안팎 지지율로 선두를 지켜왔다. 이들 주도로 연정이 구성되면 기독민주당 소속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2021년 12월 퇴진한 이후 독일에 3년여 만에 다시 보수 성향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보수 성향 정권 재집권은 난민과 이들로 인한 강력범죄로 인한 민심 이반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난민 '재이주'를 구호로 내건 독일대안당은 득표율이 3년 전 총선 때보다 배 가까이 늘어나며 원내 제2당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도보수 기치를 내세운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 역시 독일대안당과 난민 정책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독일에서는 지난해부터 난민 강력범죄가 잇따라 반이민 정서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지난달 22일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흉기를 휘둘러 2세 남아가 숨졌고, 이달 13일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집회 행렬에 차량을 몰고 돌진해 두살배기가 사망했다. 투표를 이틀 앞둔 21일에는 시리아 난민이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에서 흉기를 휘둘러 스페인 관광객이 크게 다쳤다.
집권 사회민주당과 연정 파트너 녹색당 등 진보 성향 정당들은 범죄를 저지른 난민을 신속히 추방하겠다면서도 이민정책 방향을 크게 바꾸는 데는 머뭇거렸다. 만성적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면 이민자에게 문을 닫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출구조사 결과 제1당을 예약한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은 국경을 완전히 폐쇄하고 이민자를 국경에서 바로 돌려보내겠다고 공약했다. 메르츠 대표는 극우 정당과 협력하지 않는다는 정치권 금기를 깨고 지난달 독일대안당의 찬성표를 합쳐 난민정책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강경책을 밀어붙였다. 그는 "나는 왼쪽도 오른쪽도 보지 않는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앞만 본다"며 난민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들은 미국처럼 국경 완전 폐쇄에 더해 망명 절차를 더 까다롭게 바꾸고 유럽연합(EU) 난민협정을 거부하다고 나서고 있다. 난민 추방을 위한 구금시설을 설치하고 독일에서 추방된 자국민을 거부하는 나라에는 경제 제재와 함께 개발 지원을 끊겠다고 했다. 독일대안당은 이번 총선에서 '재이주'를 공식 구호로 채택했다. 재이주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극우 세력이 난민을 추방하겠다는 뜻으로 써온 용어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