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찾아 국적 바꾼 선수들 [키워드로 트렌드 읽기]
최근 한 국가대표 탁구 선수의 은퇴식이 여러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은 중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귀화해 14년간 선수로 활약한 전지희다. 중국 허베이성 랑팡이 고향인 전지희는 중국 청소년 대표를 지냈지만, 선수층이 두터운 중국에서는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뒤 2011년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부터 파리 올림픽까지 10년 넘게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올림픽 동메달, 세계선수권 은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 1개, 동메달 5개 등 역대 귀화 선수 중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2년 동안은 '삐약이' 신유빈과 함께 여자 복식 '황금 콤비'를 이루면서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눈부신 성과를 냈다.
스포츠 분야는 타 직종에 비해 개인의 선택에 따른 '귀화' 사례가 빈번하지만, 전지희는 단순히 자신의 꿈을 이룬 걸 넘어 한국 스포츠계에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평이 나온다. 전지희를 처음 국내 실업팀에 영입했던 감독도 그의 현역 은퇴 소식에 "강한 열정과 성실한 태도로 귀감이 된 선수였다"며 "그의 헌신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할 정도다. 전지희는 "저는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다만 포기하지 않았고, 한국에 와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한국에 안 왔으면 전지희라는 탁구 선수는 없었다"고 겸손한 소감을 남겼다. 그러면서 "탁구협회나 유빈이가 부탁하면 언제든지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며 오히려 앞으로도 한국 탁구에 계속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도 전했다.
한편 지난 14일 막을 내린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으로 귀화한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쇼트트랙에서 한국 선수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 관심을 끌었다. 2019년 국가대표 선수촌 내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징계를 받은 뒤 한국을 떠난 과정이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의 모습과 겹쳐 보였던 시청자들도 있어서다. 반면 러시아 청소년 대표 출신으로 2016년에 한국으로 귀화한 예카테리나 압바꾸모바가 한국 바이애슬론에 사상 첫 동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기고, 단체전인 계주에서 은메달을 합작하는 장면도 나왔다. 당초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이뤄진 귀화였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9년 만의 첫 결실로 돌아온 셈이다.
내년에 열릴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두 선수가 팀을 이뤄 출전하는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에서 평창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특별 귀화가 이뤄졌다. 짝을 이룬 두 선수 중 한 선수의 국적으로 참가가 가능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최 경기와 달리 올림픽 무대는 두 선수가 같은 국적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임해나를 따라 중국계 캐나다인이지만 한국 선수 자격으로 호흡을 맞춰왔던 취안예(Quan Ye)는 지난해 12월 정식으로 귀화 절차를 마치면서 '권예'라는 한국 이름도 만들었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