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 매년 42조 군함 발주 부울경 조선업 도약 계기로
한국, 미 해군 함정 건조·보수 참여 기회
K조선 진화 글로벌 경쟁력 강화 기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국내 전 산업 분야에 피해를 주고 있지만 조선업계만큼은 미국 시장이 활짝 열리면서 수혜가 기대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2일 발간한 ‘미국 해양 조선업 시장 및 정책 동향을 통해 본 우리 기업 진출 기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 해군은 향후 30년 동안 매년 42조 원대의 군함 건조와 10조 원 전후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발주한다. 그간 함정 건조와 MRO 수주는 자국 산업 보호주의에 따라 미국 조선업체만 참여가 가능했지만 최근 동맹국 조선소에 문호를 열게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국내 조선업의 메카인 부울경 조선업계에 도약의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조선업은 보호주의의 부메랑 탓에 경쟁력을 잃었다. 미국 내 해상 운송 권한을 미국 선박에 한정하는 ‘존스법’이 100년 넘게 이어진 결과, 시장 경쟁이 사라지면서 해상 화물 수요와 선박 건조가 동시에 감소하고, 결국 조선소가 쇠퇴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문제는 상선뿐만 아니라 군함 운용에까지 차질이 빚어지게 된 점이다. 중국을 견제하는 해양 패권을 유지하려면 해군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함정 노후화에 MRO 지연까지 심각해지자 결국 빗장을 풀게 된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 지난달 ‘해군 준비 태세 보장법’이 발의되면서 함정 건조와 MRO 수주에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 조선소의 참여가 가능하게 됐다.
미 의회예산국(CBO)과 해군에 따르면 해군력 증강을 위해 2054년까지 함정 364척을 신규 건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매년 약 300억 달러(우리 돈 약 42조 원)씩을 투입해야 한다. 또 해군은 MRO 사업에 연간 60억∼74억 달러(우리 돈 8조 8000억∼10조 8000억 원)씩을 지출하고 있다. 미군 함정 건조와 유지·보수에 연간 50조 원 이상의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참여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 유력한데, 건조 능력이나 시설 규모로 볼 때 한국이 유리하다는 낙관론이 우세하다. 울산 HD현대중공업, 경남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그리고 부산 HJ중공업 등 부울경에 집약된 K조선의 활약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조선업계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HD현대와 한화는 올해 2∼3척의 MRO 수주를 목표로 뛰고 있다. 특히 한화 측은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필리 조선소를 인수해 현지 건조·MRO 체제까지 갖췄다. 이 사업은 대기업의 독주가 아니라 부울경 협력업체에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지역 경제의 선순환 효과도 기대된다. 또 K조선 생태계의 진화로 이어져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이기도 하고, 통상 압력을 누그러뜨리는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조선업계의 철저한 준비와 정부·지자체의 빈틈없는 지원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