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구축함 사업자 선정 하세월… 물 들어온 K방산 '먹구름'
7조 8000억 투입 6000t급 이지스함 6척 건조
2023년 기본설계 완료하고 1년 넘게 답보상태
호기 맞은 미 방산 시장, 지역 경제 악영향 우려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 전략자산이 될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프로젝트가 하세월이다.
국내 방산업계 양대 산맥인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사활 건 수주전에 승패를 가를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애초 경쟁입찰이냐, 수의계약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다 최근 양사 공동개발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이 역시 세부안을 놓고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해군력 증강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낙수효과를 기대해 온 조선업 기반의 동남권 경제도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이대로는 트럼프 2.0 시대 개막으로 호기를 맞은 세계 최대 방산 시장진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공정한 방식으로 신속하게 결론을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KDDX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대한민국 해군의 차세대 주력 함정이다. 방위사업청은 2030년까지 6000t급 KDDX 6척을 건조한다. 총사업비는 7조 8000억 원 상당이다.
특히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완성하는 첫 국산 이지스구축함으로 해군 전력 강화는 물론 한국 방위산업 기술을 세계에 알릴 기회라는 평가다.
통상 함정 건조는 1단계 개념설계, 2단계 기본설계, 3단계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4단계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하는 데, 현재 남은 건 3~4단계다.
개념설계는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이후 2023년 12월 기본설계가 완료됐고, 지난해 3단계에 착수할 예정이었으나 해를 넘긴 지금까지 답보상태다.
관건은 사업자 선정 방식이다.
원칙은 경쟁입찰이지만,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는 예외적으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복잡한 무기체계와 전투체계가 집약되는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는 연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이라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HD현대중공업은 관행대로 기본설계 수행사와 수의계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오션은 경쟁입찰을 주장한다.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전력 탓이다.
앞서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직원 9명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해군본부, 방위사업청을 방문, 기밀 자료를 몰래 촬영해 이를 미인가 서버에 보관·공유한 혐의로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방사청은 보안사고 감점 규정을 근거로 HD현대중공업에 2025년 11월까지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1.8점을 감점하기로 했다.
소수점 단위로 승패가 갈리는 수주전에서 이는 치명적인 페널티다.
이번 KDDX 수주전이 미 해군 함정 시장 진출을 노리는 국내 방산 업계에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국 조선사와 함정 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 같은 불법 군사기밀 탈취 사건에 연루됐다면 국방계약 입찰 참여가 불가능하다.
자칫 한미 방산 협력에 찬물을 끼얹는 국격 하락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보안에 상당히 엄격하다. 특히 방산에 있어선 ‘삼진아웃제’로 퇴출까지 당할 수 있다. 이번에 정부가 국내 업체의 기밀 탈취 범죄를 용납하는 느슨한 모습을 보인다면 미국 측이 한국의 보안 의식을 오해할 수 있다”고 짚었다.
방사청도 갈팡질팡하는 상황에 방산업계에서는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공동개발을 최적안으로 꼽는다.
양사가 방사청과 공동계약 후 함께 상세설계를 수행하고 2척의 선도함(1·2 번함)을 분할 건조한 뒤 나머지 4척도 나누는 방식이다.
이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함정 설계와 건조 역량을 극대화 해 개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늦어진 전력화 일정도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한화오션은 거제사업장에 특수선 4공장을 신축 중이다. 4공장은 국내 최초 스마트 크레인, 반자동 폴딩 플랫폼 등 첨단 스마트 자동화 설비가 도입돼 함정 실내 조립장으로 활용된다. 이곳에서만 연 300명 이상의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여기에 당장 한화오션과 거래하는 방산 관련 협력사만 해도 650여 곳에 달한다.
지역 상공계 관계자는 “조업이 시작되면 엄청난 낙수 효과가 기대된다”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한 방식을 통해 하루빨리 사업자 선정이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방사청도 이런 현실을 의식해 중재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강환석 방사청 차장이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대표에 이어 어성철 한화오션 특수선사업부장(사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청 조용진 대변인은 지난 8일 국방부 기자단 정례브리핑에서 “4월 중 사업분과위원회(분과위)에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양사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