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좋은 청년 일자리라는 허상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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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인구 유출에 전국이 인구 전쟁
수도권으로 마음이 뜬 청년 눈높이에
진부한 정책과 기존 일자리는 '식상'

교육과 의료 등 정주여건 먼저 개선
유입 타깃을 청년 아닌 전 연령으로
언제든 기회비용 없이 돌아오게 해야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쪼그라든 전교생 수에 놀라던 차에 경남에서 초등학교 입학식을 촬영한 포토뉴스가 한 건 올라왔다. “올해는 신입생 있어요!”라며 한 명뿐인 1학년을 둘러싸고 군 관계자들이 축하 선물을 전하고 있었다. 반나절 사이 접한 소식들에 걱정보단 헛웃음이 나와 스스로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역 소멸은 경각심이 생기기도 전에 일상에 빠르게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백약이 무효라며 나라 전체가 자포자기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도시 재생이란 단어가 회자되던 시절이 떠올랐다. 지자체마다 원도심이 깨어나면 주민이 돌아올 거라며 낡은 골목에 페인트칠 하기 바빴다. 보조금에 눈먼 사회적 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사회 문제를 호소하던, 돌아보면 실소만 나오는 장면이다.

헛구호가 된 도시 재생 이야기를 꺼내는 건 지역 소멸을 막을 대안으로 자꾸만 그 시절 감성의 정책과 해법이 도드라지는 게 걱정이 되어서다.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좋은 기업과 일자리만 있으면 청년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부르짖는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진작부터 수도권 팽창을 견제했더라면 지역 소멸의 우려는 사라졌을까. 모르긴 해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수도권 집중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촌향도 역시 수십 년 전부터 국가적 난제였다. 이제 출생율 하락까지 맞물리며 지역 소멸이란 새로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을 뿐이다.

얼마 전 한 경제단체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는 쓴웃음을 짓게 했다. 강서구 산단에서는 그렇게 보기 힘들던 청년 인력이 시내 한복판 신축 워케이션 건물에서 구인 공고를 내자 구름처럼 몰려오더란 이야기다. 대단한 급여나 복지가 보장되는 일자리가 아니어서 더 놀랐단다.

화려한 일자리만 쫓는다고 청년을 비웃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청년은 다들 딴세상 일자리를 꿈꾸는데 지역의 경제 사령탑들은 급여 보조나 기술 교육에만 예산을 쏟아붓는다. 그게 목이 말라 고향을 떠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아이에게 부모가 극복의 대상이듯, 청년에게 고향은 극복의 대상이다. 수도권이란 큰 무대를 동경하는 이들에게 고향의 일자리는 같은 값이라도 큰 매력이나 울림을 주지 못한다. 가뜩이나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판에 이런 심리적 간극까지 메우지 못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좋은 청년 일자리’란 말이 지역에선 얼마나 가성비 떨어지는 구호인가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경마광이던 제나라 장군 전기를 승리로 이끈 손빈의 비책은 ‘삼사법’이다. 손빈은 전기에게 경쟁자인 제나라 공자들이 가진 상등마에 하등마를 붙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공자들의 중등마와 하등마를 전기의 상등마와 중등마로 상대하게 했다. 자존심을 버린 배팅은 승리로 이어졌다.

부산시의회에 따르면 5년간 청년 정책의 카테고리로 투입한 예산만 6000억 원대에 달한다고 한다. 수도권 상등마에 같은 상등마로 승부수를 띄운 부산의 패착이다. 지역이 수도권과 인구 쟁탈전을 벌이며 청년 정책, 일자리 정책으로 맞대결을 벌여봐야 승산은 뻔하다.

미국 마이애미가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 등 자본가들을 끌어들이는 건 파격적인 법인세 제도다. 제주가 공공기관과 공기업 직원들의 전근지로 인기를 누리는 건 국제학교와 빼어난 자연경관이다. 부산이라면 온화한 기후와 저렴한 주택 가격,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은 문화 인프라 정도가 ‘전략마’가 되겠다.

기업과 일자리 유치만이 만병통치약이라던 부산이 최근 구역별 국제학교 설립과 서울 빅5 분원 유치, 소득세 감면 등을 새 청사진으로 언급하고 있다. 늦게나마 정주 여건에 대한 공직사회의 인식이 바뀐 점이 반갑다.

국민의 반 이상이 몰려들며 수도권의 정주 여건은 임계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위험한 신호는 앞으로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더 자주, 더 충격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코로나19가 ‘돈 버는 곳=사는 곳’이라는 그간의 직주근접 공식을 깨버렸다. 유목민의 삶을 꿈꾸는 경제 인구가 늘어나면서 정주 여건에 꾸준히 투자해 온 지역에는 반대로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배가 고픈 게 아니라 꿈이 고파서 고향을 떠나겠다는 청년에게 없는 ‘얄팍한 비스킷’을 주려고 지역의 역량을 소진하진 말자. 잠시 고향을 떠난 그들이 기회비용 없이 돌아와 기댈 수 있는 교육과 주거, 의료와 교통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연인보다 자신감 넘치게 돌아선 연인 앞에서 이별의 순간 한 번 더 망설이게 마련이다.

물론, 돌아온 이들이 청년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더 성숙해진 중장년이라면 지역 입장에서 이보다 고마울 일은 없을 터다.

권상국 지역사회부장 ksk@busan.com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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