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법 위에 선 자의 착각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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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편집부 차장

한 사람이 법 위에 올라서는 순간 민주주의는 숨을 멈춘다. 스스로 국가를 구할 존재라며 국민과 공동체 위에 서려 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결국 탄핵 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사유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속 라스콜니코프와 너무 닮았다. 인류 공동체의 약속인 법과 도덕을 넘어선 개인의 절대적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다시 마주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을 통해 물었다. “자신을 법 밖에 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의문은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를 통해 풀린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법 위에 있는 ‘비범한 인간’이라 믿었다. 법과 도덕을 초월했다. 그러니 한 노파를 살해해도 정당하다고 여겼다. 그 살인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논리. 그것은 곧 도스토옙스키가 경고한, ‘비범한 인간의 착각’이었다.

윤 전 대통령도 ‘국가적 혼란을 바로잡을 자’로 생각했을까? 그는 자신만의 신념을 감행하기 위해 민주주의 질서를 멈춰도 괜찮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을 해도 괜찮다고 여겼던 것처럼,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살해하려 했다.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계엄’ ‘탄핵은 불순한 세력의 시도’. 윤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옳고 비범하니 국민의 선택으로 구성된 국회를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했다. 또 자신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하나의 ‘음모론’이나 ‘불순 세력’으로 여겼다. 권력자가 이러한 신념을 가질 경우 민주주의가 어떻게 후퇴하는지 우리는 이미 뼈아프게 경험했다.

이러한 사실을 도스토옙스키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라스콜니코프는 반성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후 자신의 사상이 허상임을 깨달았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사랑과 고통 앞에서 비범한 자의 껍질을 벗기 시작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를 통해 말했다. “절대적 신념은 인간성을 대신할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은 무너졌지만 현재까지 반성은 없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말한다. 계엄령은 국가 안정을 위한 합리적 조치였고, 탄핵은 정치적 음모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대다수 시민들은 ‘착각’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특히 그는 검사 출신으로 법의 허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법 기술자’이다. 일반 시민에게는 어려운 법이 그에게는 참 쉬울 수도 있다.

라스콜니코프나 윤 전 대통령은 법보다 신념을 앞세우고 사회 질서를 자기 방식으로 재단하며 결국 공동체를 통제하려 했다. 그 모습은 신념이 아니라 오만이다. 그들이 알아야할 점은 민주주의를 통해 형성된 공동체는 책임지는 시민을 원한다는 점이다. 헌법은 개인의 신념이 아니라 늘 시민의 동의와 절차를 통해 정당화돼야 한다.

또 거대 야당인 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친명계와 이재명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1인당’의 기득권 역시 그들의 생각과 신념이 다른 목소리에는 극도의 폭력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기반은 대다수 시민들이다. 민주주의 공동체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차와 합의를 우회해선 안 된다. 그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깊게 무너진다. 이미 역사로 증명된 사실이다. 공동체의 약속인 법과 도덕을 초월한 비범한 사람은 없다. 그저 비범하다고 착각한 자들만 있을 뿐이다. 라스콜니코프의 반성을 돌이켜보길 바란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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