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상호관세는 생각하지 마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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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이렇게 얘기해 놓고 상대의 사고 범주를 코끼리에 붙잡아 두면 성공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프레임의 우위가 승패를 가른다. 상대가 던진 프레임에 갇히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논리적 사고와 반박 능력이 마비되고 만다. 현실 인식은 사실 자체보다 어떤 언어의 틀로 구성되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통상 전쟁을 개시하면서 상호관세라는 올가미를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적(reciprocal)이라는 형용사를 붙였지만 전혀 쌍방향적이지 않다. 근거가 없고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상호관세 산출식은 해괴망측하기까지 하다. 그냥 미국이 특정국과 무역에서 발생한 적자를 수입 총액으로 나눴다. 한국에 적용된 25%도 이 계산식에서 나왔다. 서비스(용역), 투자 부문을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재화, 즉 실물 교역의 수지만으로 불공정성을 따졌고, ‘상호성 결여’ 해결책으로 관세를 때린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점성술로 천문학을 설명하는 수준”이라고 조롱한 까닭이다.

이 막무가내 협상법은 큰 효과를 냈다. 한국 정부와 언론의 최대 관심을 상호관세에 묶어두고 반론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한미 FTA 협정문에도 숱하게 나오는 ‘상계관세’ ‘덤핑방지관세 ’ ‘보호관세’ ‘긴급수입제한조치’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만들었다. 그러니 정부 발표나 언론 보도에 여태껏 상호관세 용어가 무비판적으로 답습되고 있다. 부정확, 부당한 용어를 거부하려는 노력이 없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프레임 전쟁에서 백기투항한 셈이다.

중국처럼 보복 관세로 맞장을 뜨는 선택지는 현실적이지 않다. 한국의 경제적 번영은 안보 환경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막가파식은 위장이고 미국도 실은 윈윈 협상을 원한다. 성동격서식으로 관세를 때려 겁을 주고는 알래스카 LNG 개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따위의 관세 밖의 양보를 얻어낼 속셈이 노골적이다.

미국 국채와 증시, 환율 불안으로 90일 관세 유예가 발동되고, 품목별 면제 대상도 오락가락하면서 미국도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은 내주 우선 협상을 앞두고 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시범 케이스다. 상호관세에 집착하면 조급해지고 졸속 퍼주기로 흐를 공산이 크다.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유령 같은 상호관세를 뛰어넘는 프레임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그래야 국익을 지킨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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