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곰곰 생각] 고령 운전자를 대하는 불편한 시선
논설위원
효과 없는 면허 반납, 부정적 인식 키워
이동권, 생계, 신체 연령 무시해선 안돼
日 전문가 "운전대 놓으면 노화 가속"
집에 머물면 퇴행, 우울증 2배 연구도
비상시 오작동 방지 시스템 도입 등
'안전한 이동' 균형점, 고령 사회 숙제
‘또 고령자 역주행 사고… 면허 반납은 고작 2.4%.’
지난해 서울시청역 역주행 사고 이후 고령자 운전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은 악화일로다. 관련 뉴스 제목이 부정적인 뉘앙스 일색인 것에서 단박에 드러난다. 지자체들도 면허를 돌려받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앞다퉈 현금 보상을 내걸었다. 하지만 반납률은 해마다 2%를 겨우 넘길 정도로 저조하다. 푼돈 받자고 이동권과 생계가 걸려 있는 운전대를 놓을 수는 없다는 노년 세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장롱 면허’만 거둬들이는 실정이라 정책 효과는 미미하다.
‘인지 능력과 반응 속도 저하.’ 노인 운전이 위험하다는 근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사회적 통념만으로 노인을 도로의 사고뭉치로 몰아가는 건 곤란하다.
우선 노인 교통사고 통계를 제대로 읽어 낼 필요가 있다. 6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2012년 1만 5190건에서 2023년 3만 9614건으로 11년 새 2.6배 늘었다. 전체 사고 중 고령자 비중도 같은 기간 6.8%에서 20%로 늘었다. 이 증가세가 면허 반납론의 근거로 곧잘 인용된다.
이 수치 비교는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인구 비중의 변화를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인구는 576만 6729명에서 943만 5816명으로 63.6%나 증가했다. 노인 인구 비중도 11.5%에 18.2%로 커졌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늘면 사고 건수도 비례하기 마련이다. 인구 비중의 변화 요인을 뺀 채 사고 수치만 시계열 비교하면 고령자 사고가 급증한 것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연령별 면허 소지자 100명 당 사고 건수를 비교해야 객관적인데, 이 통계를 보면 20세 이하가 매년 1위다. 그 뒤는 60대, 50대, 20대, 40대, 30대 순이다.
연령만으로 운전 적합도를 평가하기 어려운 대목이 택시 기사 고령화 추세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23년 말 전국 개인택시 기사(16만 4334명) 중 60세 이상이 12만 4475명으로 75.7%다. 65세 이상은 51.4%인데, 부산처럼 고령화 속도가 빠른 곳은 60%가 넘었다. 고령 기사들이 핸들을 놓으면 당장 택시가 멈춘다. 개인마다 다른 건강 연령을 감안하지 않은 채 나이만을 기준으로 차량 운행 능력을 따지면 합리적인 해결책을 놓치게 된다.
“운전대를 놓으면 노화가 액셀을 밟는다.” 일본의 노인 정신의학 및 임상심리학 전문의 와다 히데키 ‘마음과 몸 클리닉’ 원장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면허를 반납해선 안 된다고 충고한다. 운전을 그만두면 외출 기회가 줄고 집에만 머물게 되면서 신체와 정신 기능이 쇠퇴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일본에서도 시행 중인 면허 반납 제도를 노인 건강과 연계한 연구 결과가 근거다.
일본 쓰쿠바대학 연구팀이 건강한 65세 이상 2800명을 6년 간 추적한 결과를 2019년 발표했는데, 면허를 반납한 뒤 돌봄 서비스를 받게 된 비율이 현저히 높았다. 자가 운전을 그만두고 집에만 머문 경우는 계속 운전대를 잡은 경우에 비해 2.1배 높았고, 버스와 자전거를 이용한 그룹은 1.6배 높았다. 연구진은 외출 대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의 증가와 신체, 정신 퇴화에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노인병학회지에 2016년 실린 ‘고령자 운전 중단과 건강 추이’ 연구도 같은 시사점을 준다. 운전 중단과 우울증의 연관성을 조사했더니 우울증 발병률이 두 배 높아졌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운전 중단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려면 이동성과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달 발간한 ‘고령 운전자 교통 안전 국내외 정책과 입법 현황’ 보고서에서 고령자의 이동성을 담보하지 않는 면허 반납, 운전 중지 정책은 사회적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행 사고가 늘거나 건강과 삶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10년의 면허 갱신 주기를 65세 이상은 5년으로, 75세 이상은 3년으로 단축, 강화했다. 75세 이상은 인지능력 검사와 교통안전교육까지 의무화해 부적합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고령자 안전 운전을 위한 정책과 제도는 앞으로 더 심화 발전돼야 한다. 예컨대 앞서 일본과 미국 연구처럼 노인 세대의 이동성과 건강 유지의 상관성을 조사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도출해 낼 필요가 있다. 고령자에 특화된 인지능력 검사를 추가하거나 유럽연합에서 의무화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등 비상시 오작동을 예방하는 기술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고령 운전자를 대하는 불편한 시선을 거두는 일이다. ‘신체 연령’이 젊은 노인의 운전을 막는 게 능사가 아니다. 건강한 노후와 안전한 이동의 균형점 모색은 초고령화 시대가 우리 사회에 던진 공동의 숙제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