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협의도 없이…” 거제시 2000억 상생기금 일방 추진에 조선업계 ‘난색’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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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삼성중 매년 100억 원
변 시장, 5년간 500억 출연 요청
“경기 불확실성 속 확답 어려워”

변광용 거제시장은 22일에는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해 김희철 대표이사와 간담회를 갖고 상생발전기금 조성 등 지역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거제시 제공 변광용 거제시장은 22일에는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해 김희철 대표이사와 간담회를 갖고 상생발전기금 조성 등 지역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거제시 제공

4·2 재보궐 선거 압승으로 3년 만에 시정에 복귀한 변광용 거제시장이 핵심 공약 사업을 둘러싼 정쟁으로 시작부터 살얼음판이다. 앞선 ‘전 시민 20만 원 민생회복지원금’에 이어 ‘2000억 원 규모 지역상생발전기금’도 공방이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복되는 논쟁에 가뜩이나 빠듯한 임기를 헛심만 쓰다 허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변 시장은 22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찾아 김희철 대표이사(사장)와 ‘상생 발전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변 시장은 지역상생발전기금 설치와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실무협의회 구성, 그리고 지역 인재 우선 채용 확대 등을 제안했다.

한화오션 김희철 대표이사(왼쪽)가 사업장을 방문한 변광용 거제시장을 영접하고 있다. 거제시 제공 한화오션 김희철 대표이사(왼쪽)가 사업장을 방문한 변광용 거제시장을 영접하고 있다. 거제시 제공

핵심은 상생발전기금이다. 이 기금은 변 시장이 지난 재선거 때 공언한 핵심 공약 중 하나다. 거제시와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3자가 향후 5년간 매년 100억 원씩 출연하는 방식으로 최대 2000억 원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조성된 기금은 △중소상공인 지원 △지역 특화 개발 △기업 환경 개선·지속 성장 강화 △내국인 고용 인센티브 △지역 출신 정규직 채용 △노동자 실질임금 향상 등에 투입한다. 이를 통해 지역과 기업, 노동자 상생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한화오션에 앞서 지난 18일 삼성중공업을 방문했던 변 시장은 최성안 대표이사에게도 같은 의제를 던지며 전향적인 협력을 당부했었다. 하지만 양쪽 경영진 모두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전 교감이 충분하지 않았던 탓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매년 100억 원은 대기업에게도 부담스러운 요구인데, 사전 협의나 논의가 전무했다”면서 “겉으론 호황이라지만 고질적인 인력난에다 미국발 관세 전쟁, 중국의 저가 공세 등으로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어 당장 확답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라고 귀띔했다.

거제시는 지난 18일 삼성중공업 본관 접견실에서 ‘상생 발전 간담회’를 열었다. 변광용 시장과 최성안 삼성중공업 대표이사가 지역상생발전기금 조성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부산일보DB 거제시는 지난 18일 삼성중공업 본관 접견실에서 ‘상생 발전 간담회’를 열었다. 변광용 시장과 최성안 삼성중공업 대표이사가 지역상생발전기금 조성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부산일보DB

거제시는 변 시장 취임 이후 공약 이행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기업 간 온도차는 여전하다. 설상가상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삼성중공업 노동자로 제8대 거제시의원을 지낸 이인태 씨는 언론 기고를 통해 “지역 경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의지는 평가할 만하지만, 이 기금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전 시의원은 “기업 출연금이 과연 실현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면서 “기업의 자금은 노동자들이 땀 흘려 일한 결과에서 나오는 가치인데 노동자 몫으로 돌아가야 할 재원을 공공의 이름으로 전용하려는 발상은 상생이 아닌 강제, 협치가 아닌 독단”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이 낸 돈으로 단체장이 생색을 낸다는 인식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며 “이런 방식의 기금 조성에 단호히 반대한다. 진정한 상생은 급조된 계획이 아니라 당사자 간 동의와 합의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거제시 관계자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기업 성장, 인재 지원을 통한 미래 발전의 밑거름이 될 재원”이라며 “소통과 토론을 거쳐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변광용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제공 변광용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제공

한편, 변 시장의 또 다른 핵심 공약인 전 시민 20만 원 지원 정책도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변 시장과 더불어민주당은 내달 원 포인트 임시회를 열어 근거 조례를 제정하고 7월 추경을 거쳐 여름 휴가 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위험천만한 포퓰리즘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조례 제정과 예산 편성 모두 시의회 동의가 필수인데, 사실상 양당 동수 구성이라 공약 실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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