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켜라”… 부산 조선기자재, 고부가가치 사업 ‘호조’
원격밸브시스템 생산 한라IMS
지난해 매출 1000억 원 달성
동화엔텍 영업이익 60% 증가
기술 선점 통한 과감한 투자
중국 저가 공세 돌파할 방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 조선사들과의 협력을 강조해 국내 조선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K조선’의 한 축인 부산 지역 조선기자재업체들이 LNG선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서 기술 선점을 한 덕분에 연이어 좋은 실적을 내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특히 이런 성과는 저부가가치 품목에서 중국 기자재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거센 공세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거둔 것이어서 더 주목된다.
■10년 전 투자가 결실 맺다
선박에 들어가는 유류 계측장치을 비롯해 원격밸브제어시스템 등을 생산하는 (주)한라IMS는 2006년부터 중국시장에 진출했다. 한라IMS는 선박 시장이 유럽을 지나 미국,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판단해 미리 중국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부지를 매입해 제품을 생산하며 현지 네트워크를 다졌다.
한라IMS는 이러한 선제적 투자 덕에 지난해 창사 이래 최초로 연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했다. 한라IMS는 매출의 70%가량이 수출인데 수출 물량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향한다.
한라IMS가 중국 진출 초기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한라IMS는 꾸준히 R&D에 역량을 모았다. 또한 현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등 장기간의 투자가 있었다. 그 결과로 최근 선박 수주가 많아진 중국시장에서 큰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김영구 한라IMS 대표는 “유럽 조선 산업이 쇠퇴한 지 50여 년이 됐다. 그럼에도 유럽 현지 기자재 업체들은 살아남고 있다”며 “시장은 바뀌어도 물류라는 수요는 항상 있다. 미리 투자를 통해 대비한다면 지역의 조선기자재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동화엔텍 역시 상당한 매출 신장세를 보이며 지역 업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기업의 지난해 매출은 298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6% 늘었다. 영업이익은 208억 원에서 333억 원으로 60% 가까이 증가했다. 호실적의 배경에는 ‘파이프 스풀’이 있다. 파이프 스풀은 선박 설계도에 맞춰 연료와 냉각수, 가스 등이 오갈 수 있도록 배관을 공장에서 사전 조립하는 모듈이다. 동화엔텍은 LNG(액화천연가스)선의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해 2014년부터 관련 기술을 연구했다. 최근 국내와 중국에서 수주한 LNG선에 꾸준히 동화엔텍의 기술이 들어가고 있다.
동화엔텍 김동건 대표는 “2019년 처음 수주를 할 때까지 5년 이상 수익이 나지 않았지만 지속해서 R&D에 투자했다”며 “중국 업체들도 관련 기술이 있지만 시장을 선점했다는 점이 바이어들에게 크게 어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위협은 더 거세다
하지만 독보적 기술을 가진 중견기업이 아니라 대다수의 중소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조선기자재가 포함된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대중국 수출입은 2022년 16억 5300만 달러 적자에서 2024년 18억 8600만 달러 적자로 그 폭이 커지고 있다.
국내 기자재의 가격 경쟁력은 일본에 비해서도 비교 우위가 아니다. 특히 일본의 조선기자재는 극한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것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다. 조선기자재 통신장비를 만드는 A 대표는 “일본 제품은 ‘저 가격에 저런 기능도 넣었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많은 반면 인건비가 높아진 데다 엔화가 약세라 가격 경쟁력이 밀리는 일도 많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술 선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부산대 이제명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선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좀 더 과감한 투자와 연구 개발을 할 필요가 있다”며 “가격경쟁력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기술 선점은 이를 돌파할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