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메이데이에 다시 보는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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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철학박사

벤 샤안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 휘트니 미술관 벤 샤안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 휘트니 미술관

5월 1일은 메이데이, 노동절이다. 1886년 5월 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시 헤이마켓 광장에서 일어난 노동자 시위는 그 전날 경찰에게 살해당한 노동자를 추모하고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평화 행진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경찰 해산 작전 도중 발생한 폭탄 투척 혐의로 체포된 8명의 노동자 중 4명이 증거불충분에도 사형당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1889년 7월 제2인터내셔널에서 5월 1일이 ‘국제 노동자의 날’로 지정된다.

한편 1928년 4월 사추세스주 사우스 브레인트리 신발공장에서 급여를 운반하던 경비 2명이 살해되고, 약 1만 5000달러가 강탈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구두공 니콜라 사코와 생선 장수 바르톨로메이 반제티를 체포한다. 둘은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이자 무정부주의자로 정부 감시 대상이었다. 이들은 체포 당시 총기 소지를 이유로 살인 혐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모든 증거는 모호하고 불충분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에는 남·동유럽에서 대규모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기존 앵글로-색슨계 미국인들은 이들을 문화적·언어적 ‘타자’이자 사회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했다. 이민자들이 저소득 노동 시장에 몰리면서 기존 노동자들과 일자리와 임금 문제로 갈등이 발생했다. 자본가 계급과 정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대규모 실업, 임금 정체, 노동자 파업 증가라는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급진주의자와 이민자에게 전가하는 ‘희생양 담론’을 생산해 낸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사코와 반제티는 배심원, 판사, 경찰에게 ‘위협의 상징’으로 이용당했다.

리투아니아 태생, 미국의 사회적 리얼리즘 작가 벤 샤안(Ben Shahn, 1898~1969)은 사코와 반제티 재판을 다룬 23점의 연작을 그렸다. 그중 하나가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1931)이다. 그림 중앙에, 관에 누운 사코와 반제티, 항소 끝에 사형 판결을 유지한 세 명의 조사위원, 배경에 웹스터 테이어 판사가 법정에서 선서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위원 중 두 명은 백합을 들고 애도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죽음을 방조하거나 조장한 인물이다. 백합은 부활한, 순결한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여기서 백합은 사코와 반제티가 노동자를 대신한 순교자였음을 암시하는 도상학적 기호다. 이 그림은 이민 노동자들의 희생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고발이며, 샤안 특유의 비판적 리얼리즘이 잘 드러난다. 샤안은 중세 종교화의 수난도 구도를 빌려, 두 이민자의 처형을 현대의 순교로 묘사하고 있다. 샤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두 가지를 그린다. 내가 사랑하는 것과 내가 혐오하는 것”. 그가 그린 전자는 미국의 노동자, 이민자, 소외된 공동체였으며, 후자는 불의와 억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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