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트럼프 대통령이 미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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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전략적·이기적 인간형에 가까워
사업 경험 '관세 전쟁'으로 표출

국가 경영 권한 넓게 해석하는 듯
하지만 기대 달리 '공짜 점심' 없어

약육강식 강탈 외교·이민자 혐오 등
논란 정책들 '정치 본질' 질문 던져

예측불허의 연속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 혹시 그가 제정신인가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는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관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시민이 출자한 주식회사다. 정확하게는 국가와 기업은 모두 이론적으로 영속가능한 법인격을 지닌 자본기계라고 주장하며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겠지만 본 글에서는 일단 트럼프식 사고를 파악하기 위해 그렇다고 가정해보자.

국가와 기업은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본을 투입해야 굴러간다. 주식회사의 자금조달은 회사채와 주식을 기본으로 하며 채권자와 주주가 관계한다. 국가의 자금조달은 국채와 세금을 기본으로 하며 채권자와 납세자가 관계한다. 여기서 납세자는 법인을 포함하며 국가 입장에서 기업은 법인세를 납부하는 시민이 된다.

미국은 작년말 기준 연방부채 규모가 약 35조 달러(약 5경 원)이며 국채 이자로만 1조 1330억 달러(1657조 원)를 지불했다. 이러한 빚잔치 배경에는 기축통화로 역할하는 달러의 책임도 있다. 기축통화국은 국제교역에서 전 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무역적자를 피할 수 없다는 ‘트리핀 딜레마’에 빠진다. 트럼프 정권은 재정적자를 완화하여 국가부채를 줄이고 국내 제조업을 회복하려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관세일까? 국가 재정 측면에서만 보자면 관세로 세수가 늘어나면 재정에 도움이 된다. 관세를 피해 외국기업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면 미국에도 법인세를 내므로 재정에 도움이 된다. 제조업이 창출한 일자리로 근로자가 늘어나면 그들은 납세자가 되므로 재정에 도움이 된다. 미국은 직장에서 건강보험을 부담하기 때문에 저소득층에서 공장근로자로 전환된 사람들에 대하여 정부가 부담해온 저소득층 건강보험(메디케이드) 비용을 줄여 재정에 도움이 된다. 현재 연방빈곤수준에 준하는 19%의 인구가 메디케이드 대상자로 심각한 빈부격차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트럼프는 사업가로서 미국의 기업지배구조인 주주우선주의를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상법 개정을 두고 논의된 주주우선주의는 경영학에서 한물간 이론으로 취급되곤 한다. 지금은 주주 대신 이해관계자모델이 공감받고 있다. 이해관계자는 주주뿐만 아니라 근로자, 채권자, 협력사, 고객, 지역사회를 포괄한다. 국가에게 주주가 납세자라면 이해관계자는 공무원, 채권자, 협정국, 내외국민, 국제사회 등으로 매칭할 수 있다. 트럼프식 ‘납세자우선주의’의 결과물은 공무원 대량해고, 동맹국 압박, 골든비자 판매와 강제추방, 파리협정 탈퇴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트럼프는 오너 경영자였기에 경영인의 권한 범위를 넓게 두는 듯하다. 주주가 반대해도 경영자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되면 밀어붙이는 것이다.

트럼프의 약점이자 미국의 진짜 문제가 채권자에서 드러난다. 기업의 주인이 주주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경영학자들이 많다. 주주는 유한책임의 특혜를 고려하면 기업을 온전히 소유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대개 주가차익을 노리지만 이론적으로 배당수익을 기대하는 행위자다. 채권자는 기업청산 시 주주보다 우선변제권을 가지며 채권을 담보로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고 채권자의 말을 들어야 했던 것과 같다. 관세 정책의 충격과 저항으로 국채금리가 올랐을 때 트럼프 정부가 화들짝 놀란 것은 당연하다. 금리 상승으로 향후 지불할 이자가 늘어나면 재정은 오히려 악화되며 채무불이행에 빠지거나 경기침체가 오면 정당성을 잃는다. 아킬레스건은 과도한 부채로 공짜 점심은 없었다.

재무경제학에서 투자 판단의 중요 지표는 이익 여부, 성장 가능성과 규모, 지속 가능성이다. 국가가 주식회사라면 기준은 다르지 않다. 한국의 미래가 암담한 것은 이 모든 지표가 나날이 악화되고 있으며 좋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주는 기업에서 부정적인 신호를 감지하면 출구전략을 짠다. 투자자는 매도하면 그만이지만 국민에게 국가에 대한 출구전략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지역에 대한 출구전략은 상대적으로 용이할지 모른다. 이는 부산에게 시사점을 준다. 지자체도 지방채와 세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고 보면 기업이 빠져나간 부산시는 법인세수 감소로 시 재정이 약화되고 일자리가 사라져 시민이 감소하고 청년층은 수도권으로 이탈했다.

세상은 이론만으로 움직이지 않지만 합리적선택이론을 참고하면 트럼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에 따르면 그는 경제학이 전제하는 고도로 전략적이고 이기적인 인간형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의 정권에서 제기되는 사익 추구 논란과 시민사회 탄압, 이민자 혐오, 약육강식의 강탈 외교 등은 정치란 무엇인가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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