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민훈장 영광… 장애아동 특기적성 개발에 힘 쏟을 것” 강병령 광도한의원 원장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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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장애인의 삶, 숱한 시련의 연속
받은 도움 많아 되갚으려 후원
장애아동, 한계 깨고 성장하길”


강병령, 광도한의원 대표원장. 부산일보DB 강병령, 광도한의원 대표원장. 부산일보DB

“영광스러운 훈장을 받고 감사한 마음도 잠시, 그 무게만큼 어깨가 더 무겁습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활동과 함께 앞으로는 의료 분야의 손이 닿지 않는 장애아동의 특기 적성 개발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은 이가 있다. 바로 강병령 (사)부산장애인총연합회 정책부회장이다.

지체장애인 한의사로 의료봉사활동과 장학사업을 꾸준히 펼쳐온 공로로 4월 18일 열린 제45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보건복지부 등 정부로부터 가장 큰 상인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국민훈장 3명, 국민포장 4명, 대통령표창 5명, 국무총리 표창 6명 등 총 18명에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포상을 전수했다.

38년째 부산 동래구 낙민동에서 광도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강병령 원장은 개원 초기부터 의료봉사활동에 뛰어들었으며, 2003년에는 인봉장학회를 설립해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의 학업을 도왔다. 또 부산의 여러 장애인단체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며 장애인 복지 증진에 기여했다. 부산시장애인체육회 부회장, 부산시민오케스트라 후원회장을 역임했고, 부산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강 원장은 “두 살 때 소아마비 진단을 받아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됐고, 부모님이 막내아들인 저를 고치려고 애를 쓰신 덕에 지팡이를 짚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다”면서 “정서적으로 힘든 사춘기 땐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아픈 이들을 고칠 수 있는 한의사가 되는 게 어떠냐는 아버지 말씀을 따라 동국대 한의대에 입학했다”고 어린 시절을 소개했다.

하지만 중증장애인의 대학 입학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그나마 불교재단이었던 동국대에 지원이 가능해 시험을 쳤는데 합격 통지서가 안 왔다”면서 “대학 측에서 뒤늦게 수학이 어려울 것 같으니 전과를 하라고 권유했는데, 아버지가 크게 항의해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장애인으로서 첫 장벽을 그때 겪었다고 했다. 한의대 예과 2년은 하숙집에서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지냈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위축되는 마음 때문에 책도 안 보고 글 쓰기에 집착하며 시간을 허비하다가, 더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본과 시작과 함께 공부에 몰입했다”면서 “5남 1녀 중 막내인 저에 대한 부모님과 가족의 기대를 져버릴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강 원장에게 또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한의원에서도 그를 봉직의로 써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경남 창원에 있던 작은 약재상이 규모를 키워 개원하는 한의원에 겨우 취업을 했고, 석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주경야독’ 했다”면서도 “이 덕분에 30대 후반, 고향인 부산 동래구에 은행 대출을 받아 건물 한켠에 세를 얻어 한의원을 개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한의원을 통해 조금씩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저를 도와준 주변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제는 내가 남을 도울 차례라는 사명감에 40대부터 후원을 시작했고, 장애를 갖고 사는 한의사지만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후원으로 큰 보람을 얻게 됐다. 특히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운동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 대한장애인요트연맹을 처음 창설하기도 했다고 뿌듯하게 소개했다. 이후 부산시 장애인체육회를 꾸리는 데에도 힘을 보탰고, 장애인 사격과 스케이트 분야를 새로 발굴해 지원·육성했다.

그러던 중 그는 2012년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겪고 만다. 강 원장은 “다리 역할을 해왔던 팔을 못 쓰게 되면서 1년 반 동안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는데, 지팡이에서 휠체어로 이동수단이 바뀌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안 되어 있는 상황을 직접 겪으면서 경제적 후원을 넘어 직접 무언가를 바꿔내는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커진 것이다. 이후 2015년부터 장애인총연합회 정책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다치지 않았다면 소극적이고 나태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며 “부정적 경험으로 인해 더 크고 올바른 생각을 갖게 됐고, 더 많은 장애인, 특히 나이 어린 친구들과 장애아동들이 희망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졌다”고 밝혔다.

강 원장은 “장애인 복지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생활 속에서 개선돼야 할 점,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가 많다”면서 “장애아동들이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좌절하지 말고, 마음의 문을 열어 한계를 깨고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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