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블록체인·AI 등 첨단 기술 기반 스타트업 키워야죠” [심준식이 만난 블록체인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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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부산연합기술지주 박훈기 대표

IBM·GS홈쇼핑 거쳐 창업 육성가 변신
BNK서 금융·IT 융합 사업 진두지휘도
대학·테크노파크와 282억 펀드 조성
112개 기업에 193억 투자·고용 창출
“아시아 대표 스타트업 허브로 도약”

부산연합기술지주 박훈기 대표. 비온미디어 제공 부산연합기술지주 박훈기 대표. 비온미디어 제공

[편집자주]‘심준식이 만난 블록체인 히어로즈’는 블록체인 전문 매체 비온미디어의 심준식 대표가 디지털자산 시장의 리더들과 나누는 심층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 미래 비전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부산이 아시아 디지털자산 허브로 성장하기 위한 길을 모색합니다.


"실리콘밸리 품질을 부산 가격으로 구현하는 스타트업을 키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IBM과 GS홈쇼핑을 거쳐 부산 스타트업 육성가로 변신한 박훈기 부산연합기술지주 대표를 만나 부산 스타트업 생태계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직장만 부산에 있으면 여기서 살고 싶어." 부산 센텀시티의 높은 빌딩 창문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회의실, 부산연합기술지주 박훈기 대표는 10년 전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리며 웃었다. 아내와 함께 부산 해운대에 놀러왔던 그날, 조선호텔에서 제공하는 야간 투어 버스를 타고 해질녘 부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문득 그런 말을 했다. 그 말은 현실이 됐다.

"향후 실리콘밸리의 세계적인 기업이 될 부산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키우는 재미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IBM에서 15년간 IT 기반을 다진 후, 40대 초반에 GS홈쇼핑 CIO로 파격 발탁됐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젊은 나이에 대기업 임원이 된 것이다. 그의 첫 업무는 혼란스러웠던 IT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당시 GS홈쇼핑은 ERP를 바꾸면서 배송이 안 되고 장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과감한 접근법을 택했다. 그는 협력업체 대표 100여 명을 한자리에 모아 솔직한 문제 공유를 요청했다.

"과거는 묻지 않겠습니다. 문제점과 해결책을 솔직히 말해주세요."

이 접근으로 70~80개 프로젝트가 도출됐고, 모든 것을 뜯어고치자 시스템 장애는 사라졌다. 그는 이때 깨달았다. "혁신은 솔직함에서 시작된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 그는 GS홈쇼핑의 CIO뿐만 아니라 미래 전략까지 담당하게 됐다. 그는 당시 회장과 함께 카자흐스탄,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등을 다니며 회사의 글로벌 전략을 수립했다.

이후 BNK금융지주 디지털&IT부문 부사장으로 이직한 그는 금융과 IT의 융합을 이끌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혁신기술을 도입하고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 박 대표가 이끄는 부산연합기술지주는 부산 16개 대학과 부산테크노파크가 출자한 ‘반관반민’(半官半民) 구조의 공공 액셀러레이터다. 단순한 투자기관을 넘어 기술사업화와 창업 육성, 성장 지원까지 스타트업의 전 생애주기를 밀착 지원하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부산연합기술지주는 6개 펀드로 282억 원을 조성해 112개 기업에 193억 원을 투자했고, 이를 통해 2206억 원의 후속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박 대표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과는 고용 창출 효과다.

부산연합기술지주 박훈기 대표. 비온미디어 제공 부산연합기술지주 박훈기 대표. 비온미디어 제공

"우리 투자 기업들의 고용이 110명에서 880명으로, 700% 이상 증가했습니다. 수익성만 추구하는 민간 벤처캐피털과 달리, 우리는 수익성뿐만 아니라 기술의 사업화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 지역 창업 생태계 기여도를 함께 고려합니다."

그러나 박 대표는 부산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실을 솔직히 진단한다. 이것이 그의 솔직함에서 비롯된 혁신 철학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서울이 100이라면 부산은 30 수준입니다. 단순히 돈의 차이가 아니라 인재, 기업, 기술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서울에선 스타트업이 100억 투자를 이야기하는 게 일상적이지만, 부산에선 '이래 안 되는 얘기인가요'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지역 대학의 우수한 인재들이 성과에 맞는 보상과 인정을 받지 못해 서울로 떠나는 '인재 유출'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해결책으로 그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지역에 상관없이 인재를 영입하는 개방적 문화이고. 둘째는 투자부터 글로벌 진출까지 한 번에 지원하는 원스톱 플랫폼이다.

"현재는 스타트업들이 투자, 공간, 홍보, 글로벌 진출 등을 각각 따로 뛰어다니며 해결해야 합니다. 언론은 홍보를, 부산시는 규제 지원을, 우리는 투자를, BNK는 후속 투자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한다면 얼마나 효율적일까요?"

부산연합기술지주는 최근 58억 규모의 '부산지역혁신 플라이하이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향후 8년간 약정 총액의 80%를 부산 기반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며, 특히 부산 9대 전략산업과 5대 미래 신산업 분야 기업을 집중 지원한다. 또한 지역 대학과의 긴밀한 협업을 바탕으로 대학생 창업 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부산 센텀시티 사무실에서의 박훈기 대표. 비온미디어 제공 부산 센텀시티 사무실에서의 박훈기 대표. 비온미디어 제공

30년 IT 경력에서 얻은 창업 노하우로 박 대표는 'C2F4' 원칙을 강조한다. 창의성(Creativity), 경쟁력(Competitiveness), 집요함(Fierceness), 견고함(Hardness)이 성공의 열쇠라는 것. 그는 또한 "처음부터 글로벌하게 시작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의 미래 비전은 '실리콘밸리 품질, 부산의 가격'이다. 서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글로벌 수준의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부산의 특화 산업인 해양, 물류 분야에 스마트 항만, 해양 드론, 해사 데이터 분석,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하고, 바이오, 헬스, 디지털 금융, 인공지능(AI) 기반 관광 콘텐츠도 미래 유망 분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5년 후, 부산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허브가 될 것입니다. 삶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부산의 젊은이들도 꿈을 크게 말하고, 도전하길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 대표는 "부산을 떠나는 우수 인재들에게 '여기 있으면 뭐가 되겠어?'가 아니라 '여기 있으면 뭐든 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사가 아닌,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역과 규모의 벽을 넘어서려면 솔직함으로 문제를 직시하고, 개방적 문화로 인재를 포용하며, 글로벌 시각으로 도전해야 한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지나친 작은 부산의 스타트업이, 내일의 실리콘밸리를 이끌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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