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예의를 갖춰 마시는 차문화 확산에 힘쓰겠습니다” 이상호 천년차문화 대차회장
우연히 차 접한 뒤 평생 차인 생활
박종한 선생 만나 차 연구 더 매진
대차회, 차문화 정립과 전파 주도
귀정차 등 국산 명차 탄생도 기대
이상호 2025 천년차문화 대차회장이 차(茶)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모든 사람이 차(茶) 정신문화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존경과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4월 5일 경남 진주시에서 열린 ‘2025 천년차문화 대차회’에서 이상호 대차회장이 한 말이다. 누구나 손쉽게 구하고 마실 수 있는 ‘차’지만, 그 한 잔에 담겨 있는 의미와 가치는 다른 음료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차를 즐겨왔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예(禮)를 갖춰 차를 마시고 즐기는 ‘차문화’는 훨씬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차문화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6·25 등을 거치며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다.
현대 차문화 발상지는 경남 진주시다. 진주 지역 차인들이 차문화 부흥을 위해 1969년 ‘진주차례회’를 결성했고 1981년 5월 25일에는 진주성 촉석루에서 ‘차의 날’을 제정했다.
2025 천년차문화 대차회에서 이상호 대차회장이 차담회를 갖고 있다. 진주목문화사랑방 제공
이상호 천년차문화 대차회장도 진주에서 차인으로 살고 있다. 이 회장이 차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40~50년 전의 일로, 우연히 차를 마신 뒤 그 매력에 푹 빠졌다. 1990년대에는 산청군에서 다우회를 결성해 전국 차인들과 교류에 나섰고, 2004년에는 일본 등 세계 차인들을 초청해 ‘덕산 대차회(大茶會)’를 개최하기도 했다.
“처음 차를 마신 뒤 피가 맑아지고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산청에서 직접 차를 재배하기도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차를 좋아했고 많은 사람들이 차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시련도 있었다. 차나무를 재배했지만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 생산에 차질을 빚었고, 차인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차인들 사이에 갈등까지 생기며 결국 다우회에서 손을 놓게 됐다.
한동안 차 관련 활동을 중단했던 이 회장은 2005년 진주에서 아인 박종한 선생을 알게 되면서 다시 차에 빠지게 됐다. 아인 선생은 진주차례회 설립, 차의 날 선포 등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차문화 운동가다. 녹차·황차만 알던 이 회장은 아인 선생을 만나 보이차 등 세계 여러 차를 맛봤고, 차가 가진 정신적 문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25 천년차문화 대차회에서 이상호 대차회장이 차담회를 갖고 있다. 진주목문화사랑방 제공
“2012년 우연히 일본 다도의 중심 대덕사에 초청됐습니다. 찻그릇을 국보로 둘 정도로 다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봤고, 특히 손님에게 예를 다해 차를 대접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차문화도 이에 못지않다고 생각해서 차문화를 정립하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러 차인들의 추천을 받아 천년대차회 회장직에 올랐고, 우리나라 차조(차의 시조)를 찾기 위한 학술적 접근도 성과를 냈다. 삼국유사에 보면 ‘신라 경덕왕 때(765년) 고승 충담사가 경주에서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에게 차를 올렸다’와 ‘경덕왕과 충담사가 차담회(귀정루차회)를 가졌다’는 게 기록돼 있다. 당시 이미 차 공양·헌차 문화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올해는 귀정루차회가 있은 지 1260년째 되는 해인데, 이 회장을 비롯한 차인들의 노력으로 진주와 경주에서 천년차문화 대차회가 열렸다. 대차회는 우리나라 차조를 정립하고 존경과 배려라는 차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대차회를 통해 차문화를 일부나마 알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차인이 많아지도록 차문화 확산에 힘쓸 겁니다. 또한 귀정차, 촉석루차 등 국산 명차가 탄생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