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장생포 로또' (영상)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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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발견된 200여 마리의 참돌고래 떼

울산 남구 장생포는 국내 유일의 포경 전진 기지였다. 포경선들이 집채만 한 고래를 잡아 항구로 돌아오면 해체와 기름 추출, 고기 유통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고래 산업의 중심지였다. 전성기에는 20여 척의 포경선이 장생포항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의 상업 포경 금지 결정 이후 장생포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2008년 고래 문화 특구로 지정되면서 박물관과 체험관 등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 연간 1000만 명 이상이 찾는 고래 테마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장생포를 대표하는 먹거리는 고래 고기 요리다. 항구 전문 식당들엔 수육과 육회는 물론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고래 찌개를 맛보려는 관광객 발길이 이어진다. 고래 포획은 여전히 불법이다. 다만 특정 어종을 잡기 위한 그물에 고래가 걸려 죽은 상태로 발견된 경우에는 해경 조사를 거친 뒤 유통할 수 있다. 국내에서 혼획된 고래의 상당수는 밍크고래이고, 개체수는 연간 60~80여 마리로 알려졌다. 이 고래들이 장생포 등 전국 고래 음식점 120여 곳에 공급된다. 마리 당 경매 낙찰가는 크기와 신선도에 따라 4000만 원부터 1억 원을 넘어선다. 혼획 고래를 ‘바다의 로또’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다.

장생포 고래 관광의 백미는 3시간 동안 고래바다여행선을 타고 직접 야생 고래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고래를 발견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발견율은 2022년 7.1%, 2023년 5.2%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여행선에 승선, 고래를 직접 목격하면 ‘장생포 로또’에 당첨됐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12일 오후 3시 35분께 고래바다여행선이 장생포에서 남동쪽으로 약 13km 떨어진 해상에서 올해 처음으로 고래와 조우했다. ‘장생포 로또’를 맞은 192명의 탑승객은 당시 무리를 지어 수면을 힘차게 유영하며 정어리나 멸치 떼 등을 집단 사냥 중인 참돌고래 200여 마리를 10여 분간 눈앞에서 지켜보며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였는진 몰라도 이날은 세계 최고의 포경 유적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정 발표 하루 전이기도 했다. 더욱이 참돌고래 떼가 발견된 장생포 앞바다는 신석기시대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각종 고래들이 헤엄치던 곳이기도 하다. 이제부턴 하절기 무더위로 수온이 상승, 고래 발견 확률이 한층 높아지는 계절이다. 선사인들의 위대한 작품인 반구대 암각화를 감상한 뒤 ‘장생포 로또’에 도전하는 ‘세계유산 선정 축하 여행’에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울산 세계유산 발표전 발견된 200여 마리의 참돌고래 떼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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