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기후변화와 이주
경남 산청군에 친척을 둔 지인은 최근 친척들이 이사를 심각히 고민 중이라 했다. 4개월 전 산불로 난 엄청난 피해가 다 복구되기도 전에 열흘 전 내린 폭우 피해로 집뿐만 아니라 마을이 엉망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산청군 일대에는 일년 강우량 절반이 하루 만에 쏟아지면서 산사태와 하천 범람 등으로 1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된 상태다. 폭우로 인한 농축산물 피해액만 600억 원이 넘을 정도다.
주민들이 평생을 일궈온 삶의 터전을 떠나려는 것은 이 같은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예전에도 각종 풍수 피해와 산사태 등은 있어왔다. 하지만 요즘처럼 예측 불가능한 경우는 드물다. 불과 몇 km떨어진 곳은 해가 있는데 옆 동네에서는 물난리와 산사태로 난리다. “대한민국의 땅이 이렇게 넓었나”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 모든 게 기후변화 때문이다.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면서 언제 기후 재난이 닥칠지 모르고, 예측 또한 무의미해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에서 어느 동네, 어느 집의 재난 위험 정도가 어떤지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개발됐다고 한다. 미국에선 기상이변을 대하는 분위기가 우리와 사뭇 다르다. 학군이나 역세권처럼 부동산 매매의 척도가 될 만큼 기상이변이 일상이 됐다.
이달 초 텍사스 중부를 휩쓴 기습 홍수는 여름 캠프에 참석한 어린이 20여 명 등 130명이 넘는 목숨을 삽시간에 앗아갔다. 기록적인 폭우로 2시간 만에 카운티 하나가 초토화됐지만, 미 정부 홍수 위험 지도에는 극히 일부만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최고의 장비와 인력으로도 놓친 위험을, 한 민간 기후연구재단은 건물 단위까지 두 배 더 정확히 예견한 것이다.
핵심은 기후변화를 반영한 이른바 ‘기후 보정’ 데이터였다.기후 보정을 하지 않으면 예측은 번번히 빗나가고 뒤쳐진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국 부동산 중개 업체들은 기후 재난 위험까지 학군이나 편의시설처럼 매물 정보에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생존이 걸린 문제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여겨진다.
이 기술을 개발한 기후연구팀의 분석이 아찔하다. 연구팀은 “전 세계 인구 3억 명 이상이 기후 문제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대이동을 겪을 것”이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